대북특사 만난 아베, 비핵화 전제 北과 대화 평가
‘재팬 패싱’ 불식 위해 미일 정상회담 추진… 日언론 반응 냉랭
모리모토 스캔들로 궁지 몰린 아베… 자민당 내서도 회의론 급부상

남북·북미 대화 진전에 불편한 심기를 보였던 일본이 입장 바꾸기에 나섰지만 현지 언론들은 '재팬 패싱'을 거론하며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 실패와 북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협력 청구서가 날라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일행을 만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 정상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한미 관계에 낀 일본의 입장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론을 평가하며 아베 총리가 허겁지겁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만 “이미 한반도 문제에서 외부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13일 방일한 대북특사 서훈 국정원장과 총리관저에서 만난 아베 총리는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핵·미사일과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본의 기본방침이라면서 “한미일이 협력해서 해결에 나서자”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한일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간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지지하며 대화가 아닌 제재 강화를 주장해 왔던 일본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북미 관계 호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제외되는 ‘재팬 패싱’ 우려까지 떠오르자 오는 4월 미일 정상회담을 급하게 추진하는 등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북한이 지난 20년간 북미 대화를 시간끌기용으로 이용해 왔다는 지적에도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청와대는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아베 총리는 북한이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라는 큰 담판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 기회를 단순히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일본의 입장 변화를 대변했다.

 

당초 15분으로 잡혔던 특사단 회담이 한 시간을 넘기면서 현지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그만큼 듣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북제재 강화’라는 이인삼각 체제로 호흡을 맞췄지만 대북 유화 메시지가 통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적하기도 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면서 “2층에 올라간 아베 총리의 사다리를 빼낸 셈”이라고 평가했다.

 

◇ 日금융시장은 일단 환영… 정·재계 초긴장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지난 주말 일본 금융·주식시장은 상승세를 탔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일본 금융·주식 시장은 북미 관계 호전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정계와 재계에서는 긴장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 주요 언론 역시 “북한 비핵화를 명목으로 일본에 거액의 경제협력 청구서가 요구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긴장하는 눈치다.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의 적극적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시진핑(習近平) 정권을 배려하는 만큼 일본에 돌아오는 청구서가 두꺼워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강행 후 면제 대상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을 내세웠던 일본의 입장이 난처해진 셈이다.

 

여기에 아베 정권 근간을 흔들고 있는 ‘모리모토 스캔들’(문서조작 문제)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일본의 정치 공백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깨졌다”며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실수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고 공명당에서도 “사법부를 경시한 행위. 정부의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사건이 재조명 받으면서 내각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3월 총재 임기를 연속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당 규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아베 총리의 3선 길을 열어준 자민당에서도 아베 비판론 확산으로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아베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유력한 총리 후보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모리토모 스캔들 문제를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에 이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 지지자들도 도쿄 도내에서 만찬을 여는 등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2006년 9월부터 1년간의 1차 내각, 2012년 말 2차 내각이 들어선 후 만 6년 넘게 총리직을 맡아온 아베 총리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이기면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된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모리모토 스캔들이 아베 정권을 크게 흔들고 있다”며 “총재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정권 안정을 전제로 활성화된 시장도 정치 공백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miyuki@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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