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염보라 기자] "카드사들을 처벌해야겠죠."

금융위원회가 '카드사 건전화 및 경쟁력 제고 TF' 결과를 발표한 지난 9일. TF 결과에 '대형가맹점에 대한 보상금 허용 범위를 구체화하는 등 고비용 마케팅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데 대해, 기자들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예정인가"라고 묻자 금융위는 이같이 답변했다.

기자 몇몇은 실소를 터뜨렸다. 대형가맹점은 카드사 입장에서 절대적 갑(甲)이다. 금융당국으로서 규정을 어긴 금융사를 제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을(乙)에 대한 제재를 먼저 언급한 것은 최근 수수료율을 놓고 빚어진 대형가맹점-카드사간 갈등에서 금융위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재 카드사들은 대형가맹점들과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발(發) 카드 수수료 개편으로 수익성 악화 위기에 놓이자 카드사들은 지난 2월 일부 대형가맹점들에 '카드 수수료율을 0.2~0.4%포인트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고 협의를 진행했지만,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손에 쥔 성과는 없다.

첫 협상 대상이었던 현대·기아차가 '가맹 해지'를 무기로 승기를 거머쥠에 따라 예견됐던 일이다. 

여신금융법상 대형가맹점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하는 경우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의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없다. 금융당국이 개입하기 곤란한 영역인 탓이다. 

이런 상황을 카드사들은 잘 알고 있다. TF에 '카드수수료 하한선' 도입을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카드업계는 재벌 가맹점의 횡포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책정된 수수료율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카드수수료 하한선 도입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내용은 TF에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시장 자유' 논리에 어긋난다고 봤다. 연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인하 결정이 모든 갈등의 시작인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 셈이다.

현재 카드사 노조는 총파업 기로에 놓였다. 이들은 금융위가 △500억 초과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하한선 마련 △레버리지 배율 차별 철폐 △부가서비스 축소 등 3가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내달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의 외침은 '잘 살게 해달라'는 수준을 넘어 '살려달라'는 절규에 가깝다.

당국이 노조의 요구를 무조건 반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카드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처럼, 이들의 외침에 한번 더 귀 기울이려는 노력은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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