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5차례 연속 한국 ‘관찰대상국’ 지정
“외환시장 개입 내용 신속 공개” 첫 요구
시장, “우려가 현실로”… 한미 FTA ‘환율 조항’ 부속 합의 주목
美 환율 압박에 원화 절상 우려 확대

미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닌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지만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하라”는 조항이 붙으며 외환 시장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미 재무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에 이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일단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 외환 당국은 안심하는 분위기지만 미 재무부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공개적으로 명기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은 5차례 연속으로 관찰대상국에 분류됐다.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인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3% 초과 ▲1년간 환율시장 개입 여부(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한국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에서는 요건을 충족했지만 마지막 외환시장 개입 요건에는 미달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주요 무역적자 국가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및 통상 압력’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최근엔 중국과의 무역전쟁 가능성까지 불거지는 등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환율보고서를 내놓는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역시 보고서에서 “우리는 (무역 상대국의) 불공평한 환율 관행을 감시하고 싸우면서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정책과 개혁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관찰대상국 지정 자체가 환율개입을 견제하는 목적”이라며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 참여 금지는 물론 지정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도 금융지원 금지 등이 내려지는 등 강력한 제재가 동반된다”며 한국이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관찰대상국 분류가 어디까지나 ‘경고’의 의미일 뿐 별다른 불이익은 없다고 치부해 왔지만 트럼프 체제 하에서는 간과할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보고서 역시 한국 시장에 대한 감시 지속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한미 FTA 후폭풍 시작되나?

미 재무부가 이같은 요구를 보고서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환율 조항’이 부속 합의로 맺어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원화 절상을 위한 환율조작을 하지 말라는 부속 합의가 맺어진 것 자체가 한국을 환율조작국 후보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

 

미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일각에서는 공개를 통한 오해 불식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가운데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시장 개입 규모도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머뭇하던 정부도 드디어 입장을 바꾸고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석해 공개 범위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15일 기획재정부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해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을 만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안을 협의한다며 “협의 내용은 이번 주 내에 결정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한국의 경제 구조 ▲외환시장 영향 ▲다른 국가 사례 등을 종합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관세 인하·비관세 장벽 철폐 등 무역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FTA에서 ‘환율조작 금지’라는 외환 조항을 이례적으로 담은 우리 정부가 ‘환율 개입 조항’을 처음으로 쟁취한 미국에 대해 얼마나 주장을 관철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 게 사실이다.

 

특히 외환 시장에서는 사상 초유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앞두고 미국의 환율 압박이 더 강해져 원화 강세장이 연출되지 않을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miyuki@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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