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사업 매각 지연 장기화… 퀄컴의 NPX 인수 무산 가능성도 불거져
SK하이닉스 “지켜보겠다” 반도체 산업 인수에 빨간불
1990년 49%였던 日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17년 7%대로 ‘뚝’
日산업계, 반도체 살리기 물결 거세

중국의 반독점 심사 지연에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산업계에서 제조업, 즉 반도체 산업 살리기 바람이 불면서 일부 도시바 주주들의 매각 철회에 힘을 싣고 있고 있다.

[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중국 당국의 독점금지법(반독점) 심사 승인 지연에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東芝) 반도체사업 인수전이 장기화되고 있다.

 

도시바 측은 “조기 양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중국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매각 작업 종료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통신용 반도체 회사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 대기업 NXP반도체 인수가 무산 위기에 놓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중국의 반독점 승인 지연 탓이다.

 

올 1월 합병 계약 체결을 두 번째로 연기한 퀄컴과 NXP의 최종 매각기한은 오는 25일이지만 중국 당국은 여전히 인수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중국이 두 건의 반도체 인수전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미국 기업’이 핵심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미일 연합 역시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고 있어 미중 무역전쟁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지지통신은 “미중 무역 문제가 미국의 반도체 인수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중국의 판단 지연으로 인수전 장기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초 새로 취임한 구루마타니 노부아키(車谷暢昭) 도시바 회장은 “(중국이) 승인을 하지 않는 게 확실한 상황이 되지 않는 한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중국은 심사 지연의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의 매각 계약에 따르면 이달 13일까지 독금법 승인이 나지 않으면 매각은 6월 이후로 연기되는 조항이 있다.

 

그 전에 중국이 입장을 바꿔 승인하면 조항 변경을 통해 매각을 앞당길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중국을 움직일 방법이 없다며 도시바가 도시바메모리 매각 자체를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미중 무역 갈등·SK하이닉스… 예견된 수순

지난 1일 주요 외신은 중국 반독점 당국이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승인하지 않는 게 ‘미국과의 통상 마찰’과 ‘SK하이닉스 참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36년 만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발동한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법 301조’(무역법, 슈퍼 301조)에 입각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를 제재하고 나서며 미국과의 ‘딜’을 위해 반도체 인수합병 승인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것.

 

도시바의 경우 낸드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도시바메모리의 기술력을 얻으면 중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 인수를 승인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500~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부과 범위를 1000억 달러로 늘릴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중 통상 갈등 재점화 우려가 확대돼 NXP 인수전은 물론 도시바메모리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측에서 6월까지는 (인수전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만큼 우선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6월 말로 예정된 도시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재협상이나 매각 파기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한미일 연합은 도시바와 2조엔(약 20조원) 규모로 반도체 사업 매각 계약을 체결, SK하이닉스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3950억엔(약 4조원)을 투자하는 간접 참여 방식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다만 향후 10년간 의결권 지분이 15% 이하로 제한되고 도시바메모리 기밀정보에도 접근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도시바가 6000억엔 규모의 증자에 성공해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나자 일부 주주들은 2조엔이라는 매각금액이 너무 적게 책정됐다며 매각액을 높여 재협상하거나 기업공개(IPO. 상장)로 전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 日반도체 점유율 끝없는 하락… “제조업 살리자”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는 1990년 49%였던 일본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0년 후인 2000년 25%로 줄어들고 2017년에는 7%대까지 떨어졌다며 반도체 산업 자체가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자존심’이었던 샤프가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에 팔리고 ‘일본 전자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도시바의 핵심 부문인 반도체사업까지 매각을 앞두자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한 업계 전문가는 2009년 리먼쇼크 후 전자기업들은 실적이 나쁜 반도체를 버리면 전자부문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반도체 사업을 내팽개쳤지만 결과는 처참했다고 지적했다.

 

‘V자 실적 회복’을 달성한 히타치제작소·파나소닉 등 주요 기업의 매출은 일단 올랐지만 성장이 멈췄고 반도체 시장에서는 일본의 자리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채워가기 시작했다는 것.

 

부정회계 사건으로 사실상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도시바가 한미일 연합에 매각돼 상장폐지 위기를 넘겼을 때 주주들은 3월 말 매각기한까지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해 경영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상장폐지 가능성이 사라지자 이내 입장을 바꿔 “도시바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사업이 사라질 경우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제로(0)가 된다”며 “현 시점에서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IPO와 매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의 매각 계약에 따라 이달 1일자로 도시바는 위약금을 물지 않고도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7월 이후에는 베인캐피털에 해지 권한이 발생한다.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제조업 살리기, 반도체 산업 재건 바람이 도시바 인수전에 또 하나의 파고를 몰고 올 전망이다.

 

miyuki@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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