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염보라 기자] 지난해 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모 수입유통사 관계자를 만났다. 핼쑥해진 얼굴에 근황을 물었더니 금세 하소연이 이어졌다.

이야기인 즉슨, 이랬다. 분명 유해물질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인정받은 제품인데 환경부 검사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 "우리가 아는 사실과 다르니 재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같은 내용은 '주말용' 보도자료로 깜짝 배포됐다.

담당자는 "기업이 억울하게 받게 될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일단 이슈를 만들어보자는 태도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삼성바이오로직스 뉴스를 보면서 당시 생각이 났다. 

최근 대한민국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떠들썩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막장 드라마보다 방송 뉴스가 더 재미있어졌다는 기자의 어머니는 삼성바이오가 뭘 하는 회사인지는 제대로 몰라도 '삼성바이오가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구나'는 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상태는 아니지만, 이미 그건 중요치 않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지 않나. 대다수 국민에게 생소했던 이 회사는 그냥 '분식회계'로 낙인이 찍힌 모양새다.

사실 이 회사의 고의 분식회계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문제다. 금융감독원 역시 해석을 3번 번복할 정도니 말이다.

참고로 금감원은 지난 2016년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을 처음 제기할 당시 "문제 없다"고 판단했지만, 2018년 참여연대 출신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이 금감원장에 오른 이후 입장을 바꿨다. 

그 이후 회사는 휘청이고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봤다. 

삼성바이오는 1분기 23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 했다. 주가도 하향세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들은 천당에서 지옥을 오갔다. 삼성바이오 소액투자자 강모 씨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4일 종가인 주당 33만4500원을 기준으로 피해 규모는 1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삼성바이오와 삼정·안진회계법인을 비롯해 금융감독원과 국가 등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만약 '무혐의' 결론이 난다면 금감원과 국가 등이 피해를 책임지라는 취지다.

입장을 번복한 금감원은 말이 없고, 조용히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한 그룹 차원의 움직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증거인멸' '윗선' 등 자극적인 단어들을 연일 언론에 쏟아내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 자체가 해석에 있어 싸움 여지가 있다거나,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 감시보고서가 발행된 2016년 이전에 이미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비율이 산정됐다는 등의 사실은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에 파묻혀 증발한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를 놓고 삼성을 향한 표적수사라고 수군거린다.

이런 식의 수사와 언론 플레이가 지속된다면 실제로 삼성은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반도체 부진과 야심차게 선보인 첫 번째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폴드'를 둘러싼 논란, 더 크게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내 편'의 공격은 더욱 치명타로 다가올 수 있다.

삼성그룹의 매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한다. 종사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9만7211명으로 웬만한 소도시 인구와 맞먹는다.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는 요동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사기관이 불법 의혹이 있는 기업을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100% 확증을 찾을 때까지 중립의 기준에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언론 플레이와 프레임은 정말이지 '불필요' 하다. 일각의 의심처럼 '삼성 흔들기'가 아니라면 행동으로 증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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