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비즈니스 근간이 미국의 거래 중단 조치로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무역갈등을 벌이던 미국의 화살이 화웨이에 꽂히면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업체들의 화웨이 보이콧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던 화웨이 협력사들이 잇따라 거래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화웨이가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가운데 반도체 설계 라이선스를 제공하던 ARM까지 거래 중단을 표명하며 다른 외국 기업들도 화웨이 보이콧에 동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美의회, 화웨이·ZTE 제재 강도 높여

월스트리트저널(WSJ)과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의회 상원의원들은 22일(현지시간) 5세대(5G) 통신망을 구축할 때 화웨이와 ZTE(중싱통신) 등 중국 업체들의 장비와 서비스를 배제하는 초당적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중국 통신업체 장비들을 없애고 다른 업체 제품으로 대체하는 미국의 지역 통신사들에게 약 7억 달러(약 834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화웨이와의 거래 금지 행정명령을 내리며 대형 통신사들은 이미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통신장비를 사용 중인 소규모 지역 통신사까지 포섭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日·英이통사 이어 ARM 거래 중단… 화웨이 치명타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고조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가운데 화웨이의 주요 협력사들은 제재의 불똥을 피하기 위해 앞다퉈 거래 중단을 표명하고 있다.

이미 구글 등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에 대한 부품공급 중단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일본 3대 이동통신사가 일제히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영국 이통사 EE와 보다폰도 화웨이의 5세대(5G) 스마트폰 출시를 중단했고 23일엔 영국의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거래 중단 방침을 밝혔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만 이통사들도 화웨이의 신규 스마트폰 판매를 중단했다.

샤프도 화웨이에 제공 중인 전자부품이 미국의 거래 금지 조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와 구글 서비스에 대한 기술적 지원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ARM까지 거래 중단을 표명하면서 화웨이의 신규 스마트폰 개발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화웨이는 ARM의 특허를 활용해 반도체를 설계하기 때문에 거래가 중단되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개발하겠다는 화웨이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RM은 전 세계 스마트폰 반도체 설계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이 회사의 기술 없이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웨이도 스마트폰용 핵심 반도체 ‘기린’을 보유하고 있지만 ARM의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설계된 제품이다.

BBC는 영국에서 사업하는 ARM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ARM이 미국의 원천기술을 사용하고 있어 미 상무부의 거래제한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미국산 부품이나 소프트웨어가 25%를 넘으면 해외 제품도 거래 금지 대상이 된다”며 미국의 지식재산도 이에 포함됨을 밝힌 상태다, 

지난 2016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ARM의 핵심 기술은 2004년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 아티산 컴포넌츠를 인수하면서 얻은 것이므로 미국의 거래 금지 대상인 셈이다.

ARM 빠진 화웨이… 사업 전체에 영향 불가피

화웨이가 현재 판매 중인 모델에 대해서는 라이선스를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어 당장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향후 반도체 개발에서 ARM의 협력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은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의 반도체 전문가를 인용해 “당장 영향은 크지 않지만 ARM의 기술협력 없이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화웨이는 미국 제품이 조달되지 않는 사태에 대비해 핵심부품과 OS를 자체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해 왔다. CNBC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해 가을 자체 OS ‘훙멍’(鴻蒙)을 출시해 연말까지 중국에, 내년 초에는 해외 시장에서 상용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구글 OS인 안드로이드가 ARM과 인텔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 기술에만 대응하도록 제작돼 화웨이가 반도체를 독자 개발해도 안드로이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자체 OS가 성공해도 단말기 판매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화웨이가 ARM과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하는 반도체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ARM이 거래 중단을 선언한 이상 스마트폰은 물론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전체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TSMC·도시바 등 “화웨이와 거래 이어갈 것”

반면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선에서 화웨이와 계속 거래하겠다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대만 반도체 업체 TSMC는 23일 “미국 로펌에서 미국산 반도체 설비 사용은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며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자 부품 출하를 일시 보류했던 도시바도 이날 출하를 전면 재개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품목은 밝히지 않았지만 니혼게이자이는 데이터를 고속 처리하는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 등일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와 전자 부품 등 거래를 중단한다고 보도된 파나소닉도 미국의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 제품은 계속 공급한다고 표명했고 레노보도 거래 유지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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