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태광그룹이 이호진 총수 일가의 회사로부터 김치와 와인을 전 계열사가 강매하도록 지시하는 등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21억 8천만원을 부과하고 고발조치 했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와이어 염보라 기자] "정황 증거만으로 오너 일가를 매도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죠."

태광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개혁 프로젝트 1순위인 '일감 몰아주기' 덫에 제대로 걸렸다.

지난 17일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휘슬링락CC와 메르뱅으로부터 각각 김치와 와인을 대량 구매한 혐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경영기획실장을 비롯한 19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 조치한다고 밝혔다.

휘슬링락CC와 메르뱅은 모두 총수일가 소유 회사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의 지휘 아래 각 계열사가 직원 복지 선물로 휘슬링락CC와 메르뱅의 제품을 구입토록 해 두 회사에 총 33억원의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는 이러한 과정 뒤에 이호진 전 회장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두 회사가 총수일가 소유 회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후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우려가 상당하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이를 놓고 재계 반응은 엇갈린다. 결론적으로 총수일가가 일정 부분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호진 전 회장과 연결짓는 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한 이견이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만연한 '성과주의' 발표"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성과에 급급해 정황 증거만을 나열하며 사건을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도 정황 증거만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발표를 맡은 김성삼 기업집단국장은 이 전 회장의 지시와 관여를 확정한 이유에 대해 "위에서 어떤 지시나 관여가 없었다고 하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황 증거로 그렇게(이 전 회장의 지시한 것으로) 본다"는 정도의 대답으로 일축했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정황 증거만으로 공정위가 보도자료를 강하게 썼고, 기자들은 이 보도자료를 토대로 '갑질' '회장님표 김치' 등으로 확대 재구성해 보도했다"며 "검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이미 태광그룹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우려했다.

한발 더 나아가, 또다른 관계자는 보도자료 내에 김치 가격을 언급한 부분을 놓고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버(Over)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휘슬링락CC이 계열사에 판매한 김치의 가격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공정위는 고가의 조선호텔 김치(19만원)를 비교대상으로 세웠다. 그런데 보도자료상에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를 예로 들며 '현저히 고가'라는 말을 강조했다"며 "결국 슬링락CC가 굉장한 폭리를 취한 것 같은 느낌을 풍기게 했다"고 덧붙였다.

내부 반응도 비슷하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이 전 회장에 대해 고발 조치가 들어간 데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오너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해당 사건은 2014년 이후의 일이다.

태광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직원 개개인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어쨌든 복지비를 늘려서 플러스알파(+a)로 제공한거라 직원 입장에서는 좋았다"며 "(이 전 회장의 지시·관여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서는) 이미 2012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 않나. 회사 내부에서도 의아해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적자를 줄이려는 임직원의 노력을 총수일가를 배불리게 하려는 행위로 비하했다"며 "명확한 증거도 없이 상상만으로 회장의 지시라고 고발한 것은, 재벌 길들이기 사례로 태광을 선정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고 반발했다.

한편 태광그룹은 공정위로부터 세부 의견서를 받은 이후 입장을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홍보팀은 "향후 대응 방향이나 세부적인 의혹에 대한 공식입장은 의결서를 받아본 뒤 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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