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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유수정 기자]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 정재계가 어느때보다도 힘을 모아야 할 절실한 상황이다.

 

더욱이 정부는 이르면 금주 중 도쿄에서 진행되는 양국 당국자 간 첫 협의에서 긍정적인 대화를 진행하는 한편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대일 의존도를 줄이고 부품‧소재 산업 집중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정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우리 산업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앞서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함에 따름이다. 이번 조치로 국내 기업인 삼성, SK, LG 등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농후함에 따라 재계 역시 초비상 사태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기업과 함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 대응과 처방을 마련하고 중장기 안목으로는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상황 진전에 따라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 대응 체제 구축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고 예산·세제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10년간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에 매년 1조원씩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또 정부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 핵심도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 등 경쟁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와 함께 금주 중으로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개발 로드맵 등이 담긴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

 

이를 통해 대외 의존형 산업 구조를 단계적으로 탈피한다는 구상이다.

 

◆ 국내 부품‧소재 산업 육성 통해 대일 의존도 낮춰야

 

이는 실제 지난 5년 동안 소재·부품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90조원에 이를 만큼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에 따름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올해 지역별 무역수지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과의 무역수지는 67억달러(약 7조8000억원)적자다. 올해 상반기 대일 전체 무역수지 적자가 100억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소재·부품 분야가 약 70% 가량을 차지한다.

 

소재에서는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의 무역수지 적자가 18억4000만달러로 컸고, 부품에서는 전자부품(-21억2000만달러)의 적자 폭이 가장 컸다.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소재·부품 분야의 대일 무역수지는 151억달러(17조7000억원) 적자로, 2014년 이후 5년간 무려 763억달러(89조4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분야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40억8000만달러로, 원유 수입국인 사우디아라비아(223억8000만달러)보다도 크다.

 

이는 비단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지 50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대(對)일본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 규모는 6046억달러(약 708조원)에 달한다.

 

산유국도 아닌 나라와의 교역에서 이처럼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 것은 그간 한국이 일본의 부품·소재 기술력에 의존한 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등을 키워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다.

 

단기간에 의존도를 낮추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업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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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계 합심해 위기 극복해야

 

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한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대응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임과 동시에 “전례 없는 비상한 상황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경제계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재계 총수들 역시 일본 정재계 핵심 인물과의 잇따른 회동을 통해 해법 모색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7일 일본으로 향해 현지 정재계 인사와 릴레이 회동을 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친형 아베 히로노부의 장인인 우시오 지로 우시오전기 회장 등 거물급 인사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정 테마로 총 15건의 연구지원 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혁신소재 개발을 포함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지난 주말 일본으로 출국해 현지 금융권‧재계 관계자와 자리를 가졌다.

 

롯데의 경우 수출규제 품목에 연관된 사업이 없어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됐을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일각에서는 내달 중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자동차와 정밀화학 등 다른 산업의 부품들도 수출 규제 대상으로 추가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부는 100대 품목을 추려 대비하고 일반 부품의 연구개발에도 5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본의 조치로 인해 국내 산업의 한계점이 확연히 드러난 셈”이라며 “양국의 원만한 협의로 인한 문제 해결과 별개로 향후를 위해 국내 부품‧소재 집중 육성에 힘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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