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여름철 불볕더위를 앞두고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트포스(TF)는 주택용 누진구간을 확대해 여름철에 한해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편은 지난해 2018년 여름철에 적용했던 요금할인 방식을 상시화하는 것으로, 7-8월에 한해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한전 이사회는 한전이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시장형 공기업”임을 강조하며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소액주주들의 투자도 받고 있는 만큼 전기요금 인하는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누진 1단계 구간을 기존 0-200kwh에서 0-300kwh(100kwh 추가)로, 누진 2단계 구간을 기존 201-400kwh에서 301-450kwh(50kwh 추가)로 조정하기로 했다. 이로써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은 폭염 시 16%, 평년 시 18% 가량 감소될 전망이다.(가구당 1만원정도)

매년 여름이면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기요금 누진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해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없애자는 주장은 더해지고, 최근에는 탈 원전정책 탓에 전기요금이 올라갈 것이라는 걱정까지 겹치면서 연례행사처럼 여름철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또 거세게 일고 있다, 거북이 제자리 걸음도 아니고 몇 년째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의는 지겹도록 3가지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여름철, 가정용, 누진제가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전체적인 전기요금 체계 개편 같은 근본적인 논의는 계속 늦춰지고 있으며, 가장 기초적인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요금 원가 문제이다. 국내 전력생산의 대부분을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전력판매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발전단가와 전력판매 비용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공개된 자료도 없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한전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울화(鬱火)성 기사들은 보도되지만, 그 어디에도 한전이 적절한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 분석 자료는 없다.

어쨌거나 관건은 전기요금이다. 냉방 사용의 급증은 전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여하는 누진제도 때문 필연적으로 전기요금의 인상을 야기시킨다. 누진세가 적용되는 현행 전기요금체계는 전기를 쓰면 쓸수록 요금이 비싸질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벌어진 최저 요금과 최대 요금 사이의 차이만 11.7배에 이르는데 문제는 “형평성”이다. 이 누진세가 오직 가정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산업용과 상업용에는 누진세가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같은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1.1배), 일본(1.4배), 대만(2.4배)등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최저 요금과 최고 요금 사이의 가격 차이가 월등히 높다.

전기요금 체계의 불합리성은 전체 전력의 사용량을 따져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 사용량 중 가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산업용은 무려 55%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이 넘는 전력을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진세의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의 경우 kwh당 요금이 107원으로 가정(평균 123원)보다 싸다.

그러나 누진제도에 대한 한전과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들이 누진제도 개편 불가 입장을 고집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한전의 막대한 “영업이익” 때문이다. 한전 수익의 대부분이 전기료임을 감안할 때, 현행 누진제도를 개편하게 되면 한전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고 정부의 재정수입 역시 감소하게 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누가 보아도 그들이 원하는 그림은 절대 아닐 것이다. 

또, 국민의 전기요금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전기요금을 아직도 ‘전기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분명한 것은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 전기 사용량에 따라 내는”요금”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세금”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그 동안 정부가 국민적 요구가 있으면 수 차례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말로만 ‘전기세’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언제든지 내릴 수 있는 “세금” 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민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카드!

주택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기조(基調)에는 차이가 없고 여름철 에어컨 사용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요금인하를 통해 국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은 있지만, 그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도 없다. 결국 누군가는 이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인 것이다.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동안 정부가 국민들에게 부당하게 전기요금을 많이 거둔 것이라면 여름철에만 전기요금을 내릴 것이 아니라, 전체 요금을 인하해야 할 것 아닌가? 스스로 칭한 “시장형 공기업”인 한전이 폭리를 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당장 요금제 개편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누진세 개편안이 여름철 한 때 ‘선심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자료부터 내놓고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매년 연례행사처럼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조차 없이 또다시 요금만 깎아주는 정책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전체 전력의 절만 이상을 사용하는 기업의 에너지 과소비는 안 보이는 것인지, 오직 서민들에게만 희생과 책임을 강요하면서 기업에는 막대한 전기요금 은혜를, 가계에는 전기요금 폭탄을 안겨주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서민들의 고통만 점점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힘없는 서민들만 '봉'이요, '호구'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풍경…… 체감없는 혜택, 꼴랑 만원으로는 덮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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