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1824년 슈베르트의 일기 중에서]

 

[서울와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살아서 인정받지도, 유명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가난했다. 슈베르트에 대한 일화를 보면 후원자가 무엇이 필요하냐는 말에 “배가 고픕니다.”라는 말이 등장하고, 오래된 음식에 소금 뿌려 떨이로 파는 것을 먹어서 신장이 안 좋아 부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돈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돈이 생기면 후배 예술가와 친구들과 나누어 먹고 쓰곤 했다. 슈베르트야말로 진정한 헝그리 정신이 있는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 근처에서 태어나서 거의 빈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익혔고 그의 형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고운 미성으로 빈 합창단원이기도 했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슈베르트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슈베르트와 아버지는 마찰이 많았다고 기록된다. 슈베르트는 1804년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에게 지도를 받았고 인정도 받았다. 참고로 아마데우스에서 등장한 살리에리는 베토벤도 지도했고, 슈베르트도 지도했고, 훗날 리스트도 지도한다. 

 

슈베르트는 독신 음악가 중 한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당시 군 복무를 대신하여 학교에 근무할 수 있었는데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던 슈베르트는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조교사로 근무했다. 그곳에서 슈베르트가 처음 발표한 작품은 《장례미사곡》이었다. 슈베르트와 《장례미사곡》의 독창 부분을 맡은 테레제 그로브(Therese Grob, 1798-1875)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슈베르트의 봉급이 적다는 이유로 그녀의 부모님이 반대했고 결혼하지 못했다. 

 

천진난만하고, 엄청나게 소심한 소위 트리플 에이의 극소심 성격과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산 슈베르트는 31세의 생애에도 불구하고 1000여 곡을 남긴 다작의 음악가이다. 35세를 산 모차르트 작품의 거의 배가 되는 숫자이다. 슈베르트의 1000여 곡 작품 중 630여 곡은 가곡이다. 흔히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 부르는 이유를 많은 가곡 수를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하르트(Johann Friedrich Reichardt, 1752-1814)는 1500편의 가곡을 작곡하였지만 ‘가곡의 왕’이라고 하지 않는다. 

슈베르트의 가곡의 매력은 무엇일까?

슈베르트의 가곡은 철학, 문학과 음악을 잘 접목한 것은 물론 개인의 감정도 표현한다. 즉, 이전 작곡가들은 성악 노래의 피아노는 반주 정도의 역할에 그쳤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시의 가사와 멜로디(선율) 그리고 반주인 피아노 부분을 동등한 자격으로 부여했다. 괴테, 쉴러, 하이네, 뮐러 등과 같은 사람들의 시를 가사로 하여 멜로디를 입히고 피아노는 반주 한다. 피아노는 시의 텍스트를 잘 표현하고 시의 분위기를 위해 멜로디, 화음, 리듬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또한, 시를 읽고 난 후 얻어진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문학, 음악 그리고 감정이 잘 드러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낭만시대의 선두적인 음악가로 평가한다. 따라서 슈베르트의 1814년 작곡된 《실잣는 그레첸》은 “최초의 낭만적 예술가곡”으로 일컬어진다.

 

슈베르트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를 존경했다. 괴테는 음악가인 베토벤과도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슈베르트 작품에는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슈베르트가 보내온 악보를 돌려보냈다. 

 

1815년 18세 때부터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마왕》, 《들장미》 등 66곡의 리트를 작곡했다. 리트(Lied)란 독일 예술가곡으로 시와 피아노, 성악과 피아노가 어울려져 시의 내용을 묘사하거나 분위기를 살려 주는 성악 장르이다.

《마왕》은 독일 철학자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4)가 덴마크 전설을 바탕으로 한 민간설화 『마왕의 딸』 (Erlkönigs Tochter)에 영향을 받아 쓴 괴테의 시이다. 괴테는 1782년에 쓴 담시(대화체로 신화, 전설, 역사 등에 비극적인 사건을 서술하는 것)로 만들었고 1815년 슈베르트는 《마왕》시에 선율과 피아노 반주를 덧붙여 리트로 작곡했다.

 

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 4명의 인물로 구성되었지만, 독창자가 1인 4역을 한다. 해설자는 괴테의 시처럼 처음과 끝에 등장하고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아버지, 아들, 마왕 세 명이 교차로 대화체 형식을 살려 표현했다.

깊고 어두운 밤 아들을 안고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해설자가 묘사한다. 두려움에 떠는 아들과 안심시키려는 아버지의 대화 그리고 아이를 유혹하는 마왕과 끝내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악한 모습까지 괴테의 시의 내용을 청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반주 부분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말이 황급히 달리는 모습을 빠른 연음표의 리듬으로 사용하였다. 

 

베토벤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번호 목록에 없는 《마왕》 Erlkönig, WoO. 131 도 있다.

 

 

슈베르트의  《마왕》Erlkönig

 

<글: 김유나 컬럼리스트>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