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안건 논의가 24일(현지시간) 종료됐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국제사회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며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WTO 규범에 위반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회의에서 한일 양국은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지만 대치 양상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164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해 주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WTO 일반이사회는 2년마다 열리는 각료급 회의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최고 기관이다. 각료회의 기간이 아닐 때는 일반이사회가 최고 결정기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분위기를 주도해 WTO 제소의 근거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NHK 등 일본 언론 역시 “일반이사회에서 언급된 내용이 향후 WTO 제소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이 유리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긴장했지만 모든 회원국은 논의 과정에서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재 가능성이 거론됐던 미국도 굳게 입을 닫았다.

우리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의 조치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부당한 행위”라고 비판하며 “정치적 목적으로 세계 무역을 교란하는 행위는 WTO의 다자무역질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는 “이번 조치는 과거의 문제에 관계없이 국가안보라는 관점에서 수출관리 운용을 재검토한 것”이라며 “WTO 협정 위반이 아니니 의제로 삼기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최근 3년간 이 문제에 대해 협상하자는 일본 정부의 요구에 한국이 응하지 않았고 한국의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에 간소화했던 수출 절차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 실장은 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태도를 통해 일본의 부당성,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어떻게 회피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제네바에 파견된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외무성 경제국장을 만나 대회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 제안을 WTO 일반이사회 의장을 통해 일본 대표에 전달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지만 이하라 대사가 한국 제안을 거절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는 국제 여론을 이용한 수출규제 철회를 계획했지만 이날 회의에서 제3국 발언은 없었다”며 “김 실장이 대화를 제의했다고 말했지만 일본 측은 대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작업이 착수되고 있다며 추가 보복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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