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생명 최대 위기 헤치고 브렉시트 백서 발표
EU와 긴밀한 관계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전략 강조
영국 국민 64% “메이 총리에 브렉시트 못 맡기겠다”
메이 전략 환영하는 산업계도 “일단 지켜보겠다” 반응

브렉시트 협상을 주도했던 장관 줄사임에도 불구하고 메이 총리가 '소프트 브렉시트'를 강행하는 내용을 담은 브렉시트 백서를 발표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에도 EU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계획이지만 금융서비스 규제에서는 EU와 상호인정협정을 맺는 방안을 제외시켜 EU 측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영국 정부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백서에서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권을 구축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브렉시트 협상 방안을 담고 있는 백서에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 확대를 골자로 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EU측이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2019년 3월로 다가온 브렉시트를 앞두고 있는 영국과 EU는 오는 10월까지 브렉시트 이후 경제 관계를 합의해야 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발표한 백서를 토대로 정체되고 있는 협상을 타개한다는 방침이다.

 

120쪽에 달하는 브렉시트 백서에서 영국 정부는 자유로운 상품 교역을 통해 EU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금융서비스 분야에서는 독자적 노선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영국의 방침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일 브렉시트 협상을 주도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과 스티브 베이커 차관 사임에 이어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까지 ‘소프트 브렉시트’ 계획에 반발해 메이 정권을 떠나면서 “정치생명 최대 위기”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로운 장관을 임명하면서 차분하게 대응, 소프트 브렉시트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드 브렉시트’와 ‘소프트 브렉시트’의 갈림길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됐던 EU 단일시장 탈퇴와 관련해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후 무관세 등을 규정한 EU 단일시장 관세동맹에서는 철수하지만 원활한 무역을 이어가기 위해 농산품과 공산품의 규격·기준은 EU와 공통을 룰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EU와의 자유무역권을 통해 자동차 등 제조업에 타격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관세 역시 EU와 연계해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에서 복잡한 세관 절차가 부활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영국이 EU 수출품 관세 징수를 대행한다는 내용도 방법으로 제시됐다.

 

백서는 “브렉시트로 EU 규제에서 벗어나 다른 국가와의 FTA 협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TPP 참여 여부도 검토한다”고 밝히고 있다.

 

올 초 영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PP 탈퇴를 재확인하자 TPP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현지 언론들은 TPP 참여가 영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레그 핸즈 전 영국 무역부 장관은 “다자관계에서 지리적 제한은 있을 필요가 없다”며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검토할 것”이라며 TPP 참여에 긍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영국이 TPP에 참여하더라도 EU에 남아있는 것에 비해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이 참여를 확정할 경우 미국 탈퇴 후 힘을 잃었던 TPP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는 “영국은 브렉시트를 계기로 아시아·아프리카 등 비EU 국가들과 교역을 늘리겠다는 생각 뿐”이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경제권인 TPP에 참여해 존재감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한편 메이 총리의 계획대로 백서가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소프트 브렉시트’에 반발해 주요 장관들이 줄사임하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 역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영국 스카이뉴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64%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메이 총리에게 더 이상 브렉시트를 맡기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33%였던 불신임도가 31%포인트 급등한 반면 “메이 총리는 믿는다”는 답변은 22%, 지난 조사보다 32%포인트 급락했다.

 

산업계에서는 메이 총리의 방침을 일단 환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협상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오히려 집권 보수당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 지난해 총선 패배로 세력이 약화된 메이 총리에게는 친정인 보수당이 협상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miyuki@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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