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아베 내각이 2일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한국은 오는 28일부터 수출심사 우대 조치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한국 정부도 이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내들며 강력 대응을 시사하고 있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오는 28일부터 수출심사 우대 대상국에서 배제돼 엄격한 수출관리 대상이 된다.

일본은 지난 2004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으로 지정했지만 일본이 지정한 27개국 가운데 지정이 취소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를 막기 위해 지난 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논의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중재 가능성에도 기대가 모였지만 “한일 양국이 스스로 방법을 찾고 나아갈 길을 찾기를 바란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지난달 4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 정부가 이번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갈등 격화가 예고된 가운데 일본은 “안전보장상의 이유로 수출관리 운용 상의 재검토를 했을 뿐”이라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어 한일 관계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일본 기업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官) 관방장관도 각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는) 한국의 수출 제도와 운용에 불충분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강제징용 피해배상 소송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조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내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일 관계가 현재 심각한 상황이지만 공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공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달 말이 기한인 지소미아 재연장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강 장관과 회담한 고노 외무상 역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 장관에게 화이트리스트 제외 배제 요청을 받았지만 거부했다”며 강경 발언을 했지만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지소미아는) 한일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른 문제와 혼동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과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에 긴장하는 것은 한국이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의 상징이기도 한 지소미아를 통해 일본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지난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방위성 관계자가 “(지소미아) 협정이 양국에 매우 유효했다”고 말하는 등 한일 간이 미사일 정보를 서로 공유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경제 관련 이슈에는 강한 어조를 보였던 스가 장관도 “(지소미아) 협정은 체결된 이래 매년 자동 연장돼 왔다”며 협정 유지를 촉구했고 이와야 타케시(岩屋 毅) 일본 방위상도 “우리가 파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꼬리를 내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2016년 11월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지소미아는 양국의 기밀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협정으로 1년마다 자동 연장되지만 매년 8월 24일까지 한쪽이 폐기 의사를 밝히면 협정은 폐기된다.

이미 우리 정부 내에서는 지소미아 파기 여론이 강하다. ‘지소미아 재검토’ 카드를 꺼냈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예정대로 강행했기 때문에 이번엔 실력 행사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북한도 “지소미아는 섬나라(일본) 위정자들의 침략 야망이 배어있는 위험천만한 조약”이라며 파기를 촉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지소미아를 통해 한국으로부터 북한의 군사 정보를 얻고 있다며 “일본 반동들에게 대북군사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쓰이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 역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어 주는 셈”이라고 비난했고 대남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논평에서 “지소미아는 박근혜 전 정권과 아베 신조 정권의 범죄적 공모와 결탁의 산물”이라며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한반도 재침략의 발판을 제공하는 매국적인 협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 전문가들은 실제로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파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신중을 당부하고 있다. 만약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탈북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한국 정부의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 북한의 미사일이 떨어지는 영해를 감시하는 일본의 대북 정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에 분노한 시민들은 “과거사를 무역으로 복수하는 일본은 도쿄올림픽 자격이 없다”며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지소미아 협정을 파기해 일본을 ‘섬나라’로 전락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정보 등을 한일 간 공유하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보장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협정 유지를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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