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

 

[서울와이어] 쇼팽은 ‘마리아 보드진스카’와 헤어진 후 리스트의 소개로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를 알게 되었다. (다구백작 부인은 리스트의 애인이기도 했다).

조르주 상드는 필명이고 본명은 오로르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이다. 상드는 4세 때 아버지가 급사로 돌아가시고 이후 프랑스 노앙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파리 수도원에 기숙생이 되면서 수녀가 되고 싶어 했지만 할머니에 의해 다시 노앙으로 오게 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지인의 집에 맡겨지다가 지방의 귀족인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상드의 필명으로 쓴 1832년 데뷔작인 『앵디아나』 신문소설이 대박 나면서 이후 1000여 편의 소설을 썼다. 상드 주위에는 올레리앙 드 세즈, 스테판, 뮈세 등의 2000여 명의 지인이 있었으며 그들과 우정, 연애 등으로 자유로운 연애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상드는 자신의 마음에 들면 사귀고, 사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칼에 잘라버리는 성향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물불 안 가리고 그 사람에게만 사랑을 듬뿍 주는 뜨거운 여자임은 분명하다. 

 

상드는 1836년 쇼팽을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고, 쇼팽은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 ‘마리아 보드진스카’와 다른 남장의 모습과 당찬 모습이 쇼팽을 당황스럽게 했을 것이지만 상드의 거부할 수 없는 색다른 매력에 쇼팽도 매료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살 연상인 상드는 1838년 쇼팽에게 32장의 연애편지를 보냈으며 이후 쇼팽과 상드 그리고 상드의 두 아이와 함께 스페인 마요르카섬으로 가서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요르카 사람들은 두 사람이 혼인한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을 빌려주지 않았다. 아니 쇼팽이 이미 결핵이라는 것을 알고 마을 사람들이 피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소도시 발데모사로 갔으며 그곳의 과거 수도원이었던 ‘카르투하 수도원’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곳은 전망이 좋았지만, 그해 겨울이 몹시 추웠기 때문에 이미 폐결핵을 가진 쇼팽에겐 아주 안 좋은 환경었다. 1839년 이후 세관에 묶였던 쇼팽의 피아노가 마요르카에 도착하였고 쇼팽은 전주곡, 발라드, 폴로네이즈, 스케르초, 마주르카 등의 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쇼팽의 몸이 더욱 안 좋아지자 바르셀로나와 마르세유를 거쳐 상드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의 노앙으로 갔다. 점차 상드의 지극 정성에도 쇼팽의 병은 낫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해갔다. 게다가 상드는 그녀의 딸 솔랑쥬와 불화가 잦았는데 쇼팽이 솔랑쥬 편을 들자 둘의 사이는 점차 멀어져 갔다. 1847년 상드는 『루크레치아 플로리아니』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내용은 돈 많은 배우와 병약한 왕자의 이야기로 쇼팽은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쓴 것이라 생각하고 둘의 사이는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1848년 쇼팽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감지하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신이 죽은 후 조국 폴란드에 묻히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1849년 쇼팽의 나이 38세로 요절했으며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로 오는 쇼팽의 시신조차 입국을 금지했다. 하는 수 없이 쇼팽의 누나는 쇼팽의 심장만을 가지고 바르샤바로 들어와 성 십자가 교회에 안치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쇼팽 생애의 1/4을 차지한 9년 동안 함께 지낸 상드는 끝내 오지 않았다.

 

쇼팽을 다룬 영화 중 1991년 영화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는 쇼팽의 병약한 모습과 쇼팽이 상드의 딸인 솔랑쥬(소피 마르소 분)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 중 《소나타 2번은 3악장》]

 

쇼팽은 3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그 중 1번은 1827년에 작곡하고 2번은 1939년에 3번은 1844년에 노앙에서 작곡했다. 그 중 《소나타 2번》 3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유명하다. 첫 음부터 무거운 장례의 행진과 같은 발걸음과 엄숙한 분위기의 음형은 자신의 병약함 처지와 조국에 대한 비애를 함께 쏟아붓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나타 2번은 3악장]

 

[사진:위키피아, 들라크루아 화가가 그린 ‘쇼팽과 상드’ -하나의 그림이 지금은 두 개로 나누어져 쇼팽은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상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술관에 소장]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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