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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노노재팬이 끊임없이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와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동해 수호훈련에 일본의 독도 망언, 반일 종족주의 유엔 연설 등…일본과 연관된 사건들이 계속 꼬리를 물며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를 반복 중이라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안팎으로 불안하다.   

유사 이래 수 많은 전쟁과 항쟁의 연속이었던 우리나라 대한민국.

우리는 그 수 많은 핍박과 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더 많은 항쟁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항쟁의 의지가 당장 발등의 불만 끄는 식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以眼還眼 以牙還牙) 였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온순한 민족성 때문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역사 속에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하고, 유식하지는 않아도 지혜로웠던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이끈 덕에, 전쟁 이후 국민들의 정신까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막았으며 그 정신력이 무궁한 발전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초석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분들은 생각하면 할수록 두고두고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지난 8.15 광복절. 74번째 맞는 올해의 광복절은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맞이해 어느 해보다 마음가짐이 숙연하고 결연했었다. 이날 굴욕의 역사가 아닌, 자주독립의 의지에 초점을 맞춰 만든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았다.

 
한국인이라면 역사책에서 한번쯤 본 기억을 더듬어 소환할 수 있는 단어 “봉오동 전투”.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 황해철(유해진)은, 일본군의 숫자는 정확히 셀 수 있지만 우리 독립군의수를 셀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어제 농민이었던 자가 오늘은 독립군’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대사에, 나라 걱정보다 자신의 걱정이 더 큰 내가 또, 우리가 창피하다는 생각에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 한복판에서 이 나라를 지켜내신 그분들에게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적을 살려 보내며 후손에게 반드시 그들의 잘못을 솔직히 전하라고 했던 큰 뜻이 무엇이었는지 느끼며 한동안 가슴이 찡했다.

영화로 인해 그들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있는 반면, 살아 있어도 죽은 존재들도 있다. 소녀상 옆에서 “아베 수상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외친 엄마부대. 그들은 일본이 “우리를 도와준 나라”라며 고마움을 느낀다나 어쩐다나. 

또, 한 극우 인사는 ‘강제노역’이라는 말도 우리가 붙인 것 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자신이 제일 싫어하고 창피한 게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했다. 또 “위안부 성노예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전 서울대 교수도 있다. 이런 인물들이 쏟아내는 억측들은, 증거가 없다며 강제노역을 부인했던 아베의 말 그대로이기도 하다.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진짜 살아 있다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저들에게 정신을 빼앗긴 채 조종당하는 노예의 삶을 어찌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본질은 “경제 분쟁”이 아닌 “역사 전쟁”이다. 덕분에 우리는 올바른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깊게 깨닫는 ‘국민 대 교육’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 주변의 친일 잔재를 걷어내고, 무심했던 애국지사의 후손 예우를 돌아보고, 역사 왜곡 못지않은 무지를 자각하는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절대 반박할 수 없다. 한·일 갈등의 중심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다. 청산하지 못한 우리 안의 친일 잔재는 없는지,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가 독립운동을 벌인 우리의 애국지사에 대해 얼마나 예우해 주는지, 어떤 역사교육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회 말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어떻게 예우할 것인가의 문제도 결국은 일제와의 잘못된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한·일 관계의 평화적 해법 못지않게 우리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삶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독립유공자 후손 10명 중 9명꼴로 국내외 거주 여부가 불분명하다거나 독립유공자와 후손의 74.2%가 월 소득 200만 원에 못 미치는 삶을 산다고 한다.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 홍범도 장군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봉오동 전투는 우리 독립군 부대가 처음으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도 정작 홍 장군의 유해는 76년째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모셔오지 못하고 있다. 역사 왜곡 못지않게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하게 한다. 뜻밖의 한·일 갈등의 상황에서 식민지배, 독립군 운동, 애국지사 예우, 역사교육 문제가 무관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된 과거는 없다. 잘 살아남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들, 아직 시작도 못한 상황인데 “이제 그만해도 좋은가”라니…

저마다의 이름 값에 반문할 때다. 그들이 이름을 찾지 못하는 한, 역사와 진실을 기억해야 할 ‘자주독립국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름값은 점점 더 묵직해져만 갈 것이다.

국가도 자꾸 애국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 애국 아래에서 민(民)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어떤 성과나 결과 뒤에 희생되는 사람이 있음을 늘 함께 생각해주어야 할 것이다.

 
보름달을 손전등으로 쓰는 하느님처럼, 촛불 하나로 세상을 바꾼 힘을 가진 사람이 우리 국민이고, 전환기마다 새로운 생존력, 적응력을 발휘해 국가를 더욱 부강시킨 것은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계속되는 일본의 공격은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그 저력을 일깨워줬다. 

역설적으로 참으로 고맙다.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한·일 관계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Why를 깊게 생각하면 How는 저절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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