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위키백과, 비트겐슈타인부인]

 

[서울와이어] 리스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함께 지냈다. 그때 리스트가 이 두 나라에서 받은 인상을 1837-38년 《여행가의 앨범》과 《순례의 해》 1권과 2권 (1838-1861) 후에 3권 1877-1882으로 작곡했다. 

리스트가 마리와 살면서 연주 활동은 1839-47년 사이 1000회 이상의 독주회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살롱에서 즐겨 연주하는 쇼팽과 달리 대규모 홀에서 자신만의 독주회를 개최했다. 오늘날 ‘리사이틀’이라고 하는 말은 1840년 런던 독주회에서 리스트가 처음 사용했다. 

 

리스트는 마리와 헤어진 리스트는 그 후 수많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버지는 생전 “여자를 조심해라”라고 유언을 무시한 채...

 

리스트 연주 순회 중에 음악 생활과 사랑에 또 한 번 전환점이 찾아왔다. 1847년 리스트는 키예프에서 자선공연을 했는데, 이 연주회에서 카롤리네 추 자인-비트겐슈타인(Carolyne zu Sayn-Wittgenstein, 1819-1887)을 만났다. 폴란드의 귀족 가문의 그녀는 러시아의 비트겐슈타인 공작 가문의 니콜라스 비트겐슈타인과 결혼(Nikolaus zu Sayn-Wittgenstein, 1812-1864)해서 비트겐슈타인 공작 부인으로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선공연에서 거액의 돈을 기부했고 리스트는 그녀를 찾아보았다 한다.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역시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별 애정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비트겐슈타인 부인은 마리와 달랐던 점은 사치스럽지 않고 오히려  배려심이 많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리스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끌렸던 거 같다. 

1848년 리스트는 연주자로의 길을 접고 작곡에 전념하는 것이 어떠하냐라는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뜻대로 바이마르 궁정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작곡에만 매진했다.

 

리스트는 생전 발견된 피아노 협주곡은 두 곡이다. 1830년 피아노 협주곡1번 스케치부터 1848년 수정 완성, 연주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연은 1852년 바이마르 궁정에서였다. 연주는 리스트였고 지휘는 베를리오즈가 맡았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1번》]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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