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서울와이어] 살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부와 명예 사후에도 많은 부로 기증한 음악가 중 단연 으뜸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이다. 

로시니는 생전에 많은 부를 소유했고 두 번의 결혼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로시니의 재산은 세상을 떠나기 전 두 번째 부인에게 일부 주고, 친척들에게 주었음에도 꽤 많이 남았다. 사후 남은 재산은 약 2백50프랑이었으며 거의 말년에는 1년에 15만 프랑의 수입을 올렸다 한다. 기증한 곳은 고향인 페사로시 당국이었다. 그 기부금으로 리체우 무지칼레(Liceu Musicale)인 음악학교(1940년에 국립 조아키노 로시니 음악원(Conservatorio Statale di Musica 'Gioachino Rossini' 으로 변경)를 설립했다. 로시니는 나이 37세인 1829년에 《빌헬름 텔》의 오페라를 마지막으로 작곡 한이후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오페라 작곡을 그만둔 이유가 여러 가지로 분분한데 맛집 기행을 하기 위해 그만 둔 것이 아니냐 하는 정도로 미식가였다. 

 

특히 세계 3대 식자재인 송로버섯(Truffle)은 로시니가 가장 좋아하던 재료였다. 그가 볼로냐로 간 이유가 그곳이 송로버섯 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송로버섯을 찾는 암퇘지를 키우고 싶다는 소문까지 떠돌기도 했다. 로시니의 레시피로 만든 프랑스 요리에서 ‘알라 로시니’는 모두 '트러플'을 사용한 요리들로 로시니의 단골 요리사들이 로시니의 조언을 듣고 개발한 메뉴라고 한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1792-1868)는 호른 주자인 아버지와 소프라노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영향인지 로시니의 음악성은 천재적이고 독창적이다. 로시니의 오페라는 이후 오페라 음악가인 도니체티, 벨리니, 베르디, 푸치니 등으로 이어지는 오페라 계보의 선구자였다. 로시니는 베토벤보다 22살이 어렸지만 베토벤과 비견되는 동시대에 음악가였다. 당시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로시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도 엄청나게 어필된 음악가 임이 분명하다. 로시니는 다작의 오페라 작곡가였다. 베토벤의 오페라는 한 곡에 머무르지만 로시니는 서른 개가 넘는다. 일 년에 몇 편의 오페라뿐 아니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1816년에 단 13일 만에 작곡하기도 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 이전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로지나를 사랑하는 알마비바 백작이 바르톨로 후견인의 방해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마음을 애태우고 있다. 이때 마을의 이발사 휘가로의 도움을 받아 결혼에 골인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오페라에서 휘가로가 부르는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 아리아는 크리스 콜럼버스의 감독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도 유쾌하게 나온다. 다니엘(로빈 윌리암스 분)은 성우로 만화를 더빙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나온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언제봐도 유쾌한 영화인거 같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로빈 윌리암스지만 여장 남장 할머니로 분장해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등장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로시니 《나는 거리의 만물 박사》]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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