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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나의 옛날 추억 속엔 엿장수가 있다.

아빠가 목욕탕에 다녀오시면서 갈증 해소용으로 사다 드신 맥주병, 매일 받아 보았던 신문, 다 낡아 더 이상 물려 줄 곳 없는 신발과 옷 가지… 이것들이 쌓이면 요즘 택배 아저씨보다 더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소리가 기다려졌었다.

요즘 같으면 올 나갔다고 휙 벗어 버릴 스타킹도 최소 1번 이상은 투명 매니큐어로 올의 전진을 막아 2번 이상 조심조심 신다가 농촌 모내기 철에 거머리 공격으로부터 농부의 다리를 보호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전투복으로 활용 되었고, 입 한번 대고 버려 지는 일회용 컵은 모종을 키우는 것으로 활용되는 등 장소를 달리해 필요한 곳에서 재활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추억이 있지만 공통된 점은, 옛 기억 속에 요즘 골머리를 썩히는 “쓰레기 문제”는 없었다. 

물론 단시간 안에 우리나라가 놀라울 정도의 발전, 발견, 발명의 반복으로 우리의 생활이 꿈도 못 꿀 정도로 편해졌고 윤택해졌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풍요는 즐기되 그 혜택 뒤에 넘쳐나는 쓰레기문제를 숙제로 얻어 죽는 날까기 꾸준히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  

“현재의 쓰레기”와 “추억의 쓰레기”는 완전히 다르다. 

살아온 역사도 짧은데 시어머니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풍요로움이 참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무언가를 재활용하는 것은 결코 궁상(窮狀)이 아니고 충분히 재활용 할 수 있는 것을 생각 없이 훼손하고, 분리 과정 없이 버려 “그냥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범죄 아닐까? 

국민들의 “재활용”에 대한 기준이 확립된다면 쓰레기의 양도 더불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그 “기준”을 어겨 재활용 체계를 흔들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하이트의 돌아온 진로 소주병, 일명 “두꺼비 소주병”이다. 추억의 두꺼비를 소환하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으나 문제는 이 “소주병”이다. 기존 소주병과 크기와 색깔을 달라지면서 재활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소주병은 중량 290g, 병지름 65mm, 높이 215mm, 색깔은 초록인 “표준용기”를 사용한다. 소주의 경우 지역별로 브랜드가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2009년에 소주병을 쓰기로 협약을 했고 “빈병보증금제도”가 빈 병 회수율의 틀을 만들었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환경부담금도 내고 있고 매출 향상을 위한 마케팅을 위한 시도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왕따 소주병은 연간 50억 병이 유통되고 97%에 달하는 회수율과, 병당 6~10회 재사용되는 우리나라 공병 재활용 시스템 입장에서 보자면 반역자(反逆者)다. 

한 기업의 제품 출시에는 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 대기업의 신제품 하나에 먹고 사는 문제를 모두 올인 한 중소기업들은 돌아오는 환경 문제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치더라도, 협약을 깨면서까지 제품부터 만들어 유통해 놓고 뒤 늦게 불거진 재활용 문제에 대한 답변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니즈를 외면 할 수 없으니 다른 공병 보다는 신속하게, 섞이지 않게 구분해서 발바닥 땀나게 수거하겠다고 한다. 참, 설득력 없어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쓰레기 없이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것까지 쓰레기로 인해 제한이 적용된다면 적어도 줄이려는 노력과 잘 분리해서 버리는 방법 외에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의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계절이 바뀌었다. 조만간 한차례 옷 정리나 집 정리를 계획하고 있는 주부들이 많을 것이다. 정리를 하다 보면, 몰라서 사용하지 못했던 많은 물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발 물건이 주는 추억은 기억하되 어디에 있는 줄 몰랐던 물건들은 애초에 없는 것과 똑같음을 잊지 말기를…

아마 버리기를 반복하면서 “풍족함에 대한 집착”이 강했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우스개로 해왔던 말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참 무서운 말이 있다.

“우리 집엔 없는 게 없어. 다만 어디에 있는 줄 모를 뿐이야.” 레알 호러(horro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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