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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해마다 나이를 먹어가며 스스로 ‘철이 든다’는 생각이 든다. 탐구 시간을 들여 깨달음을 얻었다기 보다는 내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문득 깨달음을 주면서 무릎을 탁! 치게 하고,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그 중 하나가 한글에 대한 훌륭함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국적 없는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그저 사용자제를 당부하기만 했는데 역으로, 우리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언어인지 알려 줄 생각을 못했다. ‘한글’로 소통은 하고 있지만 ‘한글’에 대한 내 지식은 짧기 때문이다.

한글날은 세종대왕 25년 곧 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한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짝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세계가 모두 인정하여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었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의 일이다.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였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 “말모이”란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1920년대까지도 사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은 영화 ‘말모이’의 소재가 된 순수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조선말 큰사전’이다.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없애기 위해 광적으로 집착할 때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우리 말을 모아 만든 사전이다.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로 지정된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는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동안 작성됐다. 원고지로는 2만6500장, 총 17권으로 구성됐는데 12권은 한글학회에 소장돼 있고, 나머지 5권은 독립기념관에 기증, 보관돼 있다).

영화를 통해 학창시절 교과서로 암기하려고만 했던 많은 부분들이 쉽게 이해되었는데, 사전 탄생은 1911년 주시경 선생이 사전 편찬을 위해 말모이 작업을 하다 3년 뒤 타계해 중단된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겨진 원고는 여러 단체를 거쳐 조선어사전편찬회로, 이후 1936년 조선어학회로 원고가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1942년 초판 인쇄를 앞두고 회원33인이 검거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 원고는 압수, 실종된다. 그렇게 물거품이 된 사전편찬은 해방 이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작업에 들어가 1947년 1권이 빛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에서 얻은 지식이고 이후 이승만 정권의 한글간소화정책, 6.25전쟁으로 원고는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록펠러 재단의 원조로 1957년 한글날 마지막 6권이 나오게 된다.

영화를 보며 한글을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지켰던 이 사전편찬의 의미는, 조선어학회 대표였던 이극로의 말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한때 이런 세계적인 우리의 문화유산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한글날이 경제논리에 밀려 국경일에서 단순기념일로 격하된 적이 있었다. 지금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로 정해진 것은 2006년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개정하고부터이다. 

다른 언어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점을 제외하더라도, 전 세계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살고 있지만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에 우리 한글이 더 대단한 것이다. 

세상에 나라를 알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얼마 전 영상을 통해 BTS를 따라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미(ARMY·BTS 팬)을 보고 절로 자긍심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알면서도 여전히 쓰고, 몰라서 계속 쓰고 있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이 많다. 워낙 우리말처럼 굳어져서 고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는 주로 학문 영역의 한자어들, 가령 철학·주관·객관·이성·예술·문학·심리·과학·기술·권리·의무, 이런 어휘들이 모두 일본에서 왔다. 일본에서 서양학문 도입의 선구자로 꼽히는 19세기 사상가 니시 아마네가 만든 말들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두드리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통령·총리·장관 같은 행정용어도 뿌리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런 말들은, 일본이라는 창을 통해 근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과거 우리의 딱한 처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아픈 역사의 한 장이지만 하루 아침에 이 말들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고나 쓰자는 얘기다. 의도적인 인식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흐름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독도 지키기’에 못지 않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익히 알고 있는 생활 속 일본어 오뎅, 와사비, 우동…. 그리고 짬뽕도 일본어라는걸 알고 있는가. 

이것부터 바꾸자. 곧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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