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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난 책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의욕만큼의 독서 시간을 갖지는 못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약간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파랗고 높은 하늘에 자연스레 시선이 멈추는 이 축복받은 가을이 돌아오면 계절을 핑계 삼아 좋아하는 책 한 권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책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고자 노력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으니…누굴 원망할꼬.

욕심만큼 실천은 안되고 계산기 두드려 실천 가능한 독서 시간을 계산해 보았는데 하루 10분을 독서에 투자하면 1년이면 약 7.6일을 책을 읽게 되고 평균수명을 80세로 가정했을 때 책을 읽는 날은 총 608일에 달하게 된다. 평생 2년 가까운 시간을 책을 읽는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치가 나오고, 조금 어렵겠지만 하루 1시간을 독서에 투자하면 1년이면 45.6일을 읽게 되고, 80평생 1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책을 읽는 생산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가을에 독서를 많이 할까? 답은 ‘아니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전국 공공도서관 대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오히려 가을에 책을 가장 적게 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령 484개 공공도서관 대출데이터 약 4,200만 건의 분석 결과를 보면, 대출량이 가장 적은 달은 9월, 11월, 10월 순이었으며 오히려 대출량이 가장 많은 달은 1월과 8월이었다. 즉 ‘독서의 계절’로 불렸던 가을 대신, 실제로는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 오히려 독서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되었을까?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처음 정의한 곳은 바로 1925년 10월 30일자<조선일보>에서 였다고 한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도서관주간’을 맞아 경성부립도서관과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무료공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함께 실었는데 그 당시에 일제강점기로 출판되는 책들 대부분이 다 일본어 서적인 상황에서 독서는 조선인을 일본말과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기 좋은 문화적 도구가 되었기에 다분히 의도적으로 정의된 ‘독서의 계절’ 취지는 참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튼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명명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책을 읽기 좋아서가 아니라 단풍여행, 관광, 소풍 등 바깥으로 놀러 다니기에 좋은 날씨에 책도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는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1년 평균 독서량은 한 권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반면에 스웨덴의 평균 독서량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한국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스웨덴도 최근 유튜브 등 다양한 콘텐츠의 영향으로 독서율이 줄어들고 있어 독서장려를 위한 정책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국민들, 특히 젊은층을 독서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나라의 노력으로 책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스웨덴은 전세계 독서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들의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는 걸까. 한국 문학은 이렇게 차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인들도 읽지 않는 소설들이 스웨덴 등 유럽에서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케이팝(K-Pop)의 인기가 다른 한국문화의 관심으로 번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에서도 스웨덴처럼 책에 대한 관심을 늘리기 위해 북스타트 운동 등 다양한 장려정책이 펼쳐지고 있지만 독서율 증진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여전히 글로 된 책은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 대신 영상 등 콘텐츠 파워가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책 읽기를 싫어지게 만드는 교육과정이고 보면 독서 생활화나 어른이 되어서 독자로서 성장하는 게 어려운 환경이다. 독서는 마음의 여유와 연관성이 깊다. 생활의 여유가 없이 살다보니 책을 읽을 여유도 부족하다. 

우리나라 출판계가 호황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무너지는 출판사와 사라지는 서점들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 와중에 아이러니한 현상이 등장한다. 도서관은 많이 짓는데 사서(司書)는 턱없이 부족하고, 책은 팔리지 않는데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문맹률은 0%에 가깝지만 문해율(文解率)도 높은 우리 국민. 다분히 이율배반적이다. 확실히 스스로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보고 듣는 강의, 또 타인을 통해 정리된 정보 습득이 더욱 인인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입시(入試)와 입사(入社)시험에 그렇게 시달린 국민치고는 공부에 대한 한(恨)이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고민해야겠다. 우리에게 굳이 책이 필요할까. 우리에게 독서는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책의 물성과 독서의 의미 존재에 대해 다르게 해석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문득 이런 안타까운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건 국화꽃 향은 짙어지지만 책 냄새는 사라져가는, 독서의 계절 가을의 초입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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