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키피아]

 

[서울와이어] 차이코프스키(Peter I. Chaikovskii, 1840-1893)는 어려서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고 프랑스 가정 교사를 사모하기도 했다. 잦은 이사로 가정 교사와의 헤어짐과 어머니를 14세에 잃었기 때문에 모성애의 갈증이 커졌다. 그의 정신적인 충격은 여성에 대한 육체적인 거부로 이어졌다. 동성애적 경향이 지금은 다소 자연스러워졌지만 러시아에서는 몹시 비난을 받을 사항이었고 차이코프스키 스스로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억제하려는 노력은 더욱 그를 힘들게 몰아갔고 참을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차이코프스키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1868년 이탈리아의 오페라단원이며 오델로의 ‘데스데모나’역을 한 ‘데지레 아르토’였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보다 다섯 살이 연상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매일 그녀를 찾아가고 구애하였다. 데지레와 결혼하고 싶어 했고 아버지의 반대로 차이코프스키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는 스페인 바리톤 가수인 마리아노 데 파디야 이라모스와 결혼했다.

 차이코프스키는 1877년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antonina milyukova, 1848-1917)결혼했다. 사실 그녀를 사랑하기보다 동성애자라는 사회 이목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저리와 같은 애정 표현으로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여 차이코프스키와 혼인을 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결혼 생활에 적응 하지 못했으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잠자리를 요구하자 모스크바강으로 자살 기도를 했고 그녀와 별거 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안토니나와 별거 후 이탈리아로 요양하였고, 마침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에게 거액 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탈리아에서 귀국 후 1878년 1월에 《4번 교향곡》을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했다. 

 

차이코프스키는 6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6번 교향곡》 그가 죽기 9일 전에 초연 된 곡이다. 부제로 ‘비창’이라고 적혀있으나 그것은 차이코프스키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동생이 제안한 것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출판할 때 이 부제는 지우자고 제안했으나 출판업자는 그냥 출판했고 지금도 부제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 곡은 버나드 로즈 감독의 영화 ‘안나카레니나’에서 1악장과 4악장이 암시적인 주제를 제시함으로 더욱 영화를 감독깊게 만들었다.  

 

《6번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가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노프에게 헌정한 곡이다. 때론 조카의 말을 거론할 때 동성애를 함께 엮기도 하였으나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차이코프스키의 사망 원인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콜레라라는 병명으로 죽음으로 갔다고 기록되나 최근 밝혀진 것은 비소 중독으로 나타났다. 비소는 독극물로 동성애로 비나 받자 강압에 의한 자살설이 유력해졌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1악장)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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