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9일 서초~교대역 집회 현장, 이현영 기자 촬영]

 

[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어느 고교생이 아주 기막힌 표현을 썼다. ‘우리는 멸종위기 청소년’이라는 거다. 

기후 위기로 인류도 멸종할 수 있으니, 현재 젊은 세대가 어쩌면 그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뜻에서라고 한다. 하기야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계속 내뿜으면, 지구 기온 상승은 제어불능이 되고 환경은 파국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성세대의 대응은 심하게 미온적이라 젊은층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런 환경적이 이유에 다른 이유가 더해져 결국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찌라고 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실태조사를 보면, 초·중·고 학생들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6.57점이고 이 수치는 OECD 27개 회원의 평균 7.6점보다도 뒤처지는 결과인데 모두 7개 영역 가운데서도 현재 생활수준과 미래 안정성의 점수가 가장 낮게 나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격차가 심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빈곤 가정과 비(非)빈곤 가정의 점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게 예사롭지 않은 문제이다. 

즉 부와 가난의 대 물림이고, 이는 사회적 차별이나 기회 박탈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불공정에 민감하고 공정에 목말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요즘 2030세대는 ‘공정’을 우선 가치로 꼽는다.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정의·공정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 물음과 요구는 앞으로 훨씬 더 커지고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미온적인 기성세대에서는 이들의 가치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기성세대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정치권은 이들의 물음에 언제든지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최근 ‘공정’하지 못한 ‘조국 사태’에 대학생들이 촛불을 든 것도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라 여겨진다. 좌우 진영논리나 편들기가 아니라 불공정에 분노하는 것이다. ‘흙수저는 학사경고, 금수저는 격려 장학’ 이라니…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정말 웃기는 꼬락서니다.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나온 대학원생은 조국 사태를 보며 무기력에 빠졌다고 한 내용이 기억난다. “취업도 학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청하지도 않은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에 기가 막히고, 상식과 합리적 판단이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노력해도 무엇 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엄마·아빠 찬스’가 없는 젊은층의 한탄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번 조국 사태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서 고위층 자녀의 입시·채용 비리 의혹은 이미 오랜 고질병이란 것을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략적 차원에서 근래 여야 정치권이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자녀 입시비리에 대한 전수조사 추진이나 관련 특별법 제정을 운운하고 있지만, 비리 당사자들이 예민한 부분을 스스로 실행할 의지는 있는지, 또 그 효과도 의문스럽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시끄러웠던 기사를 찾아보았다. 당시 대입 부정 학생과 그 학부모 1400여 명단을 공개해 큰 파장이 일었었는데 그 중에는 전 문교부 장관과 국회의원, 교수 등 지도층 인사가 상당수 포함되었다. 하지만 명단에 600여 명이 축소 발표됐다는 의혹으로 빛이 바랬고, 어쨌거나 그 후로도 입시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13-2019학년도 서울 주요 8개 대학 등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년간 6만 명이 넘는 인원이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류 심사와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며, 객관적 성적을 도출하는 시험이 필수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또 주최측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인 요즘 청년층. 그 어마어마한 스펙을 등에 지고 있어도 입시와 취업에서 가혹한 경쟁에 시달린다. 조국 장관이 ‘진보집권플랜’에서 이를 한국사회의 경쟁 과잉·중독이라 부르고, 그 경쟁이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고, 또 ‘자기는 1차선을 씽씽 달리고, 다른 사람은 1차선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경쟁의 이름으로 특권을 포장하는 행위’라고 하며 사회구성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고 같은 출발선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건만… 그랬던 조국 장관의 자녀 문제가 터지면서 특권층의 입시비리가 수면위로 드러나니 청년층은 더 상실감을 느끼고 작금의 정국에 더 허탈할 뿐이다. 

교육 관련 특혜만큼 대한민국 학부모나 청년층에 민감한 문제도 없다. 나는 못 배웠어도 내 자식은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기 바라는 게 한국의 부모 마음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절대 용서 못할 중죄로 각인된 것도 정유라의 학사비리가 청년층부터 부모 세대까지 공분을 일으켰기 때문이고 박근혜 정권의 탄핵도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의 대입 부정 폭로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뱃속에서 썩고 있는 숙변 같은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의 여러방면의 ‘갑질특혜문제’가 반복되다 보니 한 방에 날리는 공식도 만들어져 있다. 바로 자녀의 입시와 병역 의혹만 들추면 된다. 우리 국민정서는 차라리 부정축재는 참아줘도 자녀와 관련된 이들 사안에서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선 비타협적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이들 분야의 경쟁은 뭔가 늘 불공정하다는 의심이 강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부문에서 불법과 비리의혹이 발견되면 정권을 중도에 끌어내릴 만큼 파괴력도 대단하다.

불법은 아닌데 대중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게 잘못이라 했던 조국의 말. 배운 사람이라 그런지 변명도 어렵게 한다. 불법이 아니라고 하면 할수록 국민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억울함의 공감대는 확산된다. 왜냐면 합법적이라는데 너무 불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법이 불공정하면 누구나 분노하게 돼 있다. 사람들에겐 ‘공정성’의 DNA가 있어서다. 그래서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공정성’의 본능을 위반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합법적 불공정성’. 조 후보자 딸의 입시문제는 바로 이 뇌관을 건드린 꼴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대입 수시제도가 불공정하다고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데, 바로 그 증거를 눈앞에 딱 펼쳐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우린 알고 있었다. 수시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집안의 경제력, 부모의 정보력과 기획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말이다. 다만 기획력이란 게 너무나 비밀스러워서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기는 힘들었다. 하나 박사과정생이 논문 심부름 다하고도 올리기 힘든 제1저자에 인턴 2주 한 고등학생이 이름을 올릴 정도라면, 이건 상상을 넘어선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시작하는 우리나라 선행학습의 ‘경이로운 결과’일까? 

얼마 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조 후보자 딸의 자소서를 보았다. 수험생을 기른 부모 입장에서 ‘이 학생도 참 고단하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시간의 자원봉사, 수많은 기관의 인턴십, 경쟁에서의 수상 등등. 시간으로나 정보로나 도저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해내기 힘든 것들이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의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한 편으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학교 수업만으로도 힘든 고등학생이 수년이 걸릴 것 같은 이 일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해내야 할까?’. 답은 하나! 왜? 대학들이 요구하니까.

‘스펙경쟁’. 대입에서 이젠 논문이나 외부 스펙은 안 본다지만, 자소서에는 쓸 수 있으니 많이 챙길수록 좋다는 계산은 밥만 먹여 학교를 보낸 무식한 엄마인 내 머리로도 가능하다. 한 고3 선생님은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니, 스펙은 엄마가 알아서 해야 한다.” 라고. 밥만 먹인 내 입장에서는 자식들에게 죄인이다. 실제로 자율학습 능력을 보겠다는 수시는 부모 도움 없이 진짜 자율학습하는 학생들에겐 시쳇말로 ‘넘사벽’이다.

수시 당락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한 서울대 교수가 동료교수들과 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요즘 우리 대학에 좋은 애들은 들어오는데, 운이 좋은 애들이 들어온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너무 떨어졌다며 한탄하던 중 나온 말이었다. 입시 전부터 대단한 성취를 한 아이들을 뽑아놓았는데 학력수준은 떨어진다면, 진작 의심해 봤어야 한다. 이 제도 자체가 아이의 경쟁력만을 가리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출세욕과 신분상승 욕망이 있는 인간. 출신학교가 출세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 여기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욕망의 크기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욕망을 욕해선 안 될 것이다. 치열한 과정을 거친 젊은 인재들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뛰는 경기장에 부모들이 난입해 함께 뛰어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건 제도로서도 나쁘고, 젊은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떨어질 사람 끌어올려 합격시키고 대신 합격권에 있는 누군가를 끌어내려 떨어트리는 비리. 입시비리는 사회 기본질서를 무너트리는 중대한 범죄로 보고 있지만 과연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이번 기회에 그 고질병의 뿌리가 뽑힐 것인지.. 관행이었음을 이유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며 면죄부를 주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칠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회의적인 의심이 든다.그 동안의 많은 무책임한 거짓말 덕에 우리 사회에 법에 대한 신뢰는 낮고. 법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이미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흔들리는 마음 잡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정의롭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자식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엄마, 아빠가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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