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유나]

 

[서울와이어] 2017년에 나왔던 김형주 감독의 ‘보안관’영화가 있었다. 그렇게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유쾌하게 본 영화였다. 평범하고 순박한 부산의 기장 마을에 성공한 사업가 구종진(조진웅 분)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마을의 온갖 오지랖을 부리는 이대호(이성민 분)은 예전 경찰 출신이다. 그는 경찰 시절 마약범을 잡고 있었다.

 

그 때 구종진이 심부름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운반했는데 그것이 마약이었다며 정말 몰랐다고 억울해하면서 순진과 불쌍 모드로 보인 사람이었다. 그런 순진했던 구종진이 식품회사 CEO가 되어 기장에 내려왔다. 구종진은 기장에 비치타운을 건설한다며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니며 심지어 주민 반장선거에도 나오게 된다. “여러분, CHANGE라는 단어 있잖습니까, ‘변화’라는 뜻인 영어 체인지라는 단어가 있는데 여기서 이거만(G에서 C로) 지워버리면 CHANCE라고 ‘기회’가 됩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는 어떠한 상황에도 변화를 기회로 만든 사람이었다. 도축업의 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음악인, 돈이 없어 난로에 불 지필 종이조차 없어서 자신의 악보를 불쏘이개로 사용했다는 가난함 그러나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성실히 작품 활동을 했으며 오스트리아의 국비 장학금을 받게 되고 작곡가로 출세할 계기도 주워졌다.

 

그러나 또 한번 위기가 왔다. 1875년에 첫째 딸을 잃고 1877년 둘째 딸과 장남까지 차례로 병으로 떠나보낸다. 사연 많은 드보르자크지만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차례의 영국 연주여행과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스키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프라하 음악원에서 재직하는 드보르자크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미국의 쟈네트 서버(Jeanette Thuber, 1852-1946) 여사가 1892년 뉴욕의 신설된 국립음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드보르자크를 초빙 한 것이다. 그녀는 프라하 음악원 연봉의 25배가 되는 미화 15,000달러의 연봉을 제시했다. 드보르자크는 3년간의 미국 체류 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를 초청한 자넷 서버 여사가 뉴욕 증시 붕괴로 파산되었기 때문이다. 드보르자크에게 3년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시기로 오히려 민족주의자이며 고국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본다. 드보르자크는 1904년 뇌졸중과 신장병으로 사망했으며 현재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상시 드보르자크는 철도를 무척 좋아해서 열차의 차종, 제원, 분류번호, 노선도 그리고 시각표까지 다 외웠다 한다. 드보르자크가 미국에서 생활 할 때, 고국을 생각하고 작곡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 도입에서 제시된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바바바...‘도 열차의 발차 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정도였다. .

영화 ‘암살’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해방 되어 환호하는 장면에서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이 잔잔히 흐른다.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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