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불확실성에 세계 경제 엔진으로 꼽히는 중국과 유럽의 경기둔화 여파로 글로벌 금리인하 시대의 막이 올랐다. 

금리인상 기조였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들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완화 흐름에 가세, 자칫 ‘환율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앞다툰 통화완화… 금융위기 이후 최대 사이클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초저금리’라는 경기 부양책을 펼쳐 왔다. 이후 경쟁하듯 통화가치를 절하해 무역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완화를 넘어서 마이너스 금리까지 가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지난해 연준이 4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주요국들이 인상 노선에 편승하면서 한때 ‘긴축의 시대’가 예고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중국의 성장동력 약화, 이에 따른 아시아와 유럽의 경기둔화로 변동성이 확대됐다.

미 연준이 올해 완화 기조로 돌아선 데 이어 출구전략을 모색하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9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재개를 선언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디플레이션과 엔고 탈출을 위해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 ‘아베노믹스’를 펼쳐온 일본도 지난 10월 단행된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7월까지 30여개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글로벌 차원의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7월 이후 현재까지 금리인하에 나선 중앙은행도 전 세계 주요 30개국 중 16개국에 달한다. 

이와 관련 국제금융센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광범위한 금리 완화 사이클”이라며 저금리 시대 도래에 우려를 표했다.

경쟁적으로 이뤄진 통화완화 기조가 부메랑으로 작용해 세계적인 금리인하 사이클로 이어지고 결국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 완화적 통화정책→환율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이어져

주요국 중앙은행이 이미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하거나 완화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통화정책과 환율과의 연계성 강화가 환율전쟁 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0년 반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한 연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1.50~1.75% 수준으로 낮췄다. 올들어 세 번째다.

3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는 적절할 것이라고 본다”며 추가 금리인하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제로금리’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통해서라도 2020년 대선 전에 주가와 경기를 반등시키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해서 연준에 추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취임한 ECB는 향후 방향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퇴임 전 마지막 통화정책회의를 주재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예금금리를 –0.5%로 동결했다. ECB는 일단 통화완화를 멈추고 물가가 상승한다는 신호가 포착될 때까지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계획이지만 지난해 말 중단했던 양적완화(QE)를 이달부터 매달 200억 유로 규모로 재개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장기간 금융완화로 인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는 일본은행(BOJ)은 지난달 말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동결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인 장기금리도 0% 정도로 유도하는 현행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회의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를 통해 향후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마이너스인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중국도 연내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3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역대 최저 수준인 6.0%까지 떨어지면서 머지않아 ‘바오류’(保六·성장률 6% 유지)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전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3.9%를 기록했던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인 6.2% 이하로 낮아질 것이란 전망에 중국 당국이 위기 의식을 보이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제러미 스타인 전 연준 이사는 “중앙은행들이 환율전쟁을 벌여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겠지만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면서 통화가치 하락 혜택을 얻는 ‘완화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D의 공포에 R의 공포까지… 환율전쟁으로 확대될까

문제는 과거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위해 사용됐던 금리 인하 카드가 통화가치 하락을 통한 경기부양 목적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이 소비와 대출 활성화 등을 유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채권을 매입했지만 낮은 인플레이션과 저금리 기조가 자리잡은 현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며 “환율이 통화정책의 목적이 되는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해당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다.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저성장·저금리·저물가까지 겹치는 D의 공포가 전 세계에 드리우면서 일본식 장기 불황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확전으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도 확대되고 있다.

주요 외신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앞다퉈 금리를 인하하고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 움직임 역시 R의 공포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신흥국들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흥국의 경우 선진국 대비 높은 금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통화가치 하락이나 자금 유출이 우려되지만 경제성장률 하락과 금리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역수지를 위한 환율 방어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경제에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전 세계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 기조가 도미노처럼 번지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환율전쟁’ 본격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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