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 뒤 프레-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 서울와이어
자클린 뒤 프레-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자클린 뒤 프레-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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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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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아]
[사진=위키피아]

 

[서울와이어] 《자클린의 눈물》은 《캉캉》 음악으로 익숙한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작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클린의 눈물》은 오펜바흐 자신이 붙인 제목은 아니다. 첼리스트인 토마스 베그너(Werner Thomas-Mifune, 1941-)가 오펜바흐의 유작 중 미발표된 곡을 발견하고 요절한 천재 첼리스트인 자클린 (Jacqueline Mary Du Pre, 1945-1987)을 생각하고 붙인 제목이다. 

 

(장한나 첼리스트 《자클린의 눈물》)

 

《자클린의 눈물》의 애절한 선율 뒤에는 그녀의 영화 같은 일대기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영국 태생인 자클린 뒤 프레는 5살 때부터 런던 첼로 학교에 입학한 천재 첼리스트이다. 그녀는 1962년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66년 자클린은 미국 데뷔 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를 만나 그녀는 뜨거운 연애를 했다. 바렘보임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다.

 

그를 사랑한 자클린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대인으로 개종했으며 1967년 6월 15일 웨스턴 홀에서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물불 안 가리고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클린은 1971년 갑자기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다발성경과증’은 시력이 소실이 되면서 시력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감각을 또한 느끼지 못하고 마비가 오는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은 첼리스트에게 치명적이며 자클린은 모든 연주 활동을 중단한다. 그리고 기나긴 투병생활 후 완쾌되지 못하고 1987년 생을 마감했다.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은 안타까운 요절과 함께 또 다른 사연이 있다. 그의 남편이었던 바렌보임은 당시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과)와 사랑을 시작했다. 자클린은 죽기 전 까지 이혼을 하지 않았으며 결국 자클린의 죽음 이후 바렌보임은 그녀와 재혼을 했다. 바렌보임은 현재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예술가이다.

 

다음 영상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바렌보임과 함께 한 1968년 로열 알버트 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영상으로 3악장 초반 29:38경 첼리스트인 자클린의 첼로 현이 끈어지는 영상이 그대로 녹화 되었다. 그리고 31:55경 다시 3악장이 시작한다.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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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2018-09-04 13:18:37
다가올 가을에 꼭 듣게 될 애절한 선율의 음악, 바이올린 엔주보다 첼로의 연주가 계절에 더 잘 어울리네요.자클린의 삶과 열정, 사랑에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윤종하 2018-09-01 08:43:00
자클린의 눈물 애절한 선율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