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위키백과-라흐마니노프 1910년대]

 

[서울와이어] 《피아노 협주곡 2번 Op.18》의 대성공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난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1909년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을 완성했다.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은 라흐마니노프가 미국 데뷔를 위해 만든 야심 찬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은 3악장 구조로 1악장은 평화롭고 잔잔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참고 억누르는 듯한 차분함으로 단순한 유니즌의 주제가 등장한다. 주제의 선율은 점차 발전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빠른 스케일과 화려한 기교, 꽉 찬 화음의 진행을 마구 쏟아낸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와 대립이 이루어진 후 피아노만을 위한 카덴차가 시작된다. 많은 음표와 어려운 난이도로 구성된 카덴차 이후 1악장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감된다.

 

2악장은 ‘intermezzo(간주곡)’으로 서정적이고 느린 진행이 러시아의 애환을 노래하듯 연주된 후 3악장으로 진입한다. 기본적으로는 악장마다 쉬는 간격이 있는 반면 이 곡은 2악장과 3악장 사이의 쉬는 휴지부 없이 이어서 진행한다. 

우크라이나 태생 미국 피아니스트인 발렌티나 리시차(Valentina Lisitsa, 1973-)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 연습 동영상에는 30초 정도 2악장에서 3악장으로 넘어 가는 부분을 휴지부 없이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악장은 ‘나 라흐마니노프야!’ 라는 것을 보여주듯 비르투오소의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색채를 펼쳐주고 있다. 마치 1악장에 억누르고 있던 많은 이야기의 해결하듯 협화음의 진행과 옥타브의 연속진행으로 화려하게 곡을 마무리한다. 

1996년 개봉된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을 “미치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고 말했던 작품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악장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 3악장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 1909년 11월 28일 월터 담로슈(Walter Damrosch)의 지휘와 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연주에 의해 초연된 후 말러(Gustav Mahler)의 지휘로 다시 한 번 연주되었다. 그리고 1928년 한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러시아 출신 호로비츠(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1903-1989)였다. 지금은 20세기를 대표했던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남아있다. 그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준비된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로비츠의 집안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집안이 몰락했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다. 러시아에서 수많은 리사이틀을 했지만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1926년 함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대타로 연주했다는 것이다. 천재성만으로 할 수 없는 작품으로 호로비츠가 평상시 연습하지 않았다면 가능 할 수 없던 것이다. 그 덕분에 1928년 25세의 호로비츠는 우상이자 존경하는 라흐마니노프를 만나게 되었고 《피아노 협주곡 3번 Op.30》도 연주하게 된 것이다. 

호로비츠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했고 1930년 최초로《피아노 협주곡 3번 Op.30》을 녹음 이후 총 여섯 종의 레코딩을 남겼다.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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