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천 페이지가 넘는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들 때는 위험부담이 크다. 글 속에서 담겨 있는 인물 묘사와 배경은 시각화할 수 있지만, 인물들의 세심한 감정과 갈등을 전달하기에는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 [네이버 영화 캡쳐]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1877년 출판된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48년 줄리앙 뒤비비에르(Julien Duvivier, 1896-1967)감독이, 1997년 버나드 로즈 감독이, 2012년까지 조 라이트 감독까지 세 번 리메이크 되었고, 뮤지컬, 발레 작품에서도 재탄생되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 영화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ich Tchaikovsky, 1840– 1893) 음악을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6번 b단조 Op.74)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는 1악장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4악장이 영화를 감싸고 있으며, 영화의 중간중간에서도 주제 선율이 등장한다. 곡이 침울하고 음산하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 동생 모데스트(Modest Ilyich Tchaikovsky, 1850-1916)는 (비창(Pathetique) 교향곡) 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눈이 가득 쌓인 숲길을 레인(알프리드 몰리나 분)이 길을 헤매면서 시작한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의 1악장)의 도입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 바순의 악기가 무겁게 시작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를 이끈다면 안나 카레니나의 불안한 심리상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를 위한 환상 소품집 Op.3 중 No.1 ‘엘레지’)가 대변해 준다.

 

(엘레지)란 ‘비가’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또한 슬픔의 시를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두 곡의 (엘레지)가 등장한다. 한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이루어진 (피아노 트리오 엘레지 3중주 Op.36)와 다른 한 곡은 안나 카레니나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피아노를 위한 환상 소품집 Op.3 중 No.1 ‘엘레지’)가 있다.

어린 나이에 고관 카레닌(제임스 폭스 분)과 결혼한 안나 카레니나(소피마르소 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오빠 스티바(대니 휴스톤 역)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기차를 타고 간다. 스티바가 가정교사와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 위기에 빠지게 되어 안나 카레니나가 중재를 하러 가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기차 안에서 브론스키 어머니(피오나 쇼 분)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한다.

 

브론스키(숀 빈 분)는 기차역으로 어머니를 마중 나왔다. 어머니를 찾던 중 차창을 따라 객차로 들어가다 안나 카레니나와 마주쳤다. 소설에서 브론스키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브론스키는 그녀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어서도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품 있고 우아한 아우라 때문에도 아니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브론스키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무도회 왈츠 장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오빠의 일을 해결해 준 안나 카레니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차창 밖으로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와의 왈츠를 떠올린다. 기차가 잠시 정차하여 바람을 쐬러 나온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밖에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브론스키를 발견한다. 그 후 브론스키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안나 카레니나는 냉정하게 돌아선다. 안나 카레니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하듯 라흐마니노프의 (Op.3 중 No.1  엘레지) 선율은 하얀 눈과 함께 휘몰아친다.

그들의 사랑은 어디에 빨려 들어가듯이 계속 깊어져만 갔다.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 카레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모든 것을 고백하고 헤어지려 하지만 카레닌은 이혼하려 하지 않는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는 불륜임에도 너무나 사랑하기에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의 부적절한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잦은 싸움과 아편 중독으로 인한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합실에서 중얼거린다. 라흐마니노프의 (Op.3 중 No.1  엘레지) 와 함께...그리고 그녀는 기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고 들어올 때 철로로 몸을 던진다.

“주여 모든 것을 용서해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2Fy4kSo7Xx8

 

사랑해서 행복했고, 사랑해서 불행한 이들의 사랑은 19세기 소설임에도 지금 현실에 사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글: 김유나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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