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창조적 혁신에 길을 묻다 (8)
OPEC+균열, 네 자매 지배력 축소
美 세일가스서 비롯, 양측 견제 강화
LNG 등 청정에너지 도입은 확대 추세
석유 의존도 줄며 유가 회복 요원
업계 ‘30달러 저유가 시대’ 생존법 익혀야

SK에너지의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SK에너지의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마지노선은 배럴당 30달러, 10달러대 추락도 대비해야 한다.”

국내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시대에서 업계가 살아남으려면 이 수준 내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공황)과 사우디아라비아ㆍ러시아가 촉발한 유가전쟁에 미국산 셰일가스 생산 확대 등이 촉발한 유가 폭락 사태는 아직도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바다 위에는 팔리지 않는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실어놓고 운항하지 않는 선박들이 둥둥 떠 있고, 각국 정부가 언택트(Untact) 조치를 강력하게 실시하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뜸해졌고, 항공기는 비행을 멈췄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업종들도 수익이 줄면서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생산을 줄이고 있다.

국내 정유 업계는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 손실은 1조7752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기록 ‘어닝 쇼크’를 일으켰으며, 에쓰오일은 1조73억 원, 현대오일뱅크는 5632억 원의 족자를 냈다. 이달 중순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GS칼텍스의 적자 규모도 6000억 원 내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 1분기 영업 손실은 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업계도 어려운 상황이다.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은 2365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9% 줄었고, 대산공장 폭발 사고가 겹친 롯데케미칼은 1분기에 영업 손실 860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영업이익 2978억 원)와 비교해 적자로 돌아섰다. 석유와 관련한 모든 기업들이 적자로 전환하거나 수익이 대폭 줄었다.

에쓰오일 울산 공장. 사진=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 울산 공장. 사진=에쓰오일 제공

업체들은 코로나19의 영향이 본격화한 2분기 실적은 더욱 안 좋아 질 것이라며 대혼란에 빠져있다. ‘포스트 코로나’는커녕 당장 생존할 수 있는 재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유 업계나 석유화학 모두 플랜트를 운용하기 때문에 생산을 중단할 수는 없다. 설비 정기보수 시기를 앞당기는 방식으로 일부 감산을 시행하지만 역부족이다. 배터리 등 비석유 사업 부문을 강화해 나간다고는 하지만 수요산업 매출 축소로 이마저도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결국 업황이 개선되려면 국제 유가가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 유가 시장은 지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석유경제의 성장을 대표해왔던 ‘가격 통제력의 붕괴’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회원국이 손잡고 출범한 OPEC+가 연초 감산 논의를 두고 분열을 일으킨 가운데, 셰일혁명으로 OPEC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미국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OPEC+의 유가 통제력에 금이 가면서 중동 지역 석유 생산량을 좌지우지 하는 초대형 오일 메이저 ‘포 시스터스(네 자매·Four Sisters, 엑손모빌·셰브런·BP·로열더치셸)의 영향력도 더욱 약해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통 정유 업체와 셰일가스 업체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가 간 합의에 따른 감산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과거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풍력, 태양광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여 왔지만, 최근의 국가들은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고 있다.

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량이 적었던 액화천연가스(LNG)는 카타르 등 주요 생산국이 설비 확충 및 고도화와 육상과 해상에서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는 등 생산량을 늘리고, LNG운반선 등 운송 인프라도 늘어나면서 사용량이 증가하며 석유를 견제하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꼭 석유가 아니어도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실제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석유와 같거나 비슷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유가가 회복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러다 보니 전통 석유생산국과 기업은 셰일가스와 LNG 등과의 치킨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감산을 주저하고 있고, 유가는 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대형 석유사는 이미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다.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비축하고, 긴축 경영에 들어가는 등 배럴당 10달러대 진입에 대비 중이다”며 셰일산업과의 전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연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셰일산업의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30~50달러 정도로, 20달러대 유가가 유지되면 셰일업계는 연쇄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GS칼텍스 여수 사업장 전경. 사진=GS칼텍스 제공
GS칼텍스 여수 사업장 전경. 사진=GS칼텍스 제공

 

국내업계는 이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어느 쪽이던 원유 도입선이 쓰러지면 제품 수급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저유가 시대에서 어떻게 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할지도 관건이다.

김연규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석유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저유가 상황에서 줄어든 중국과 아시아 석유시장을 두고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셰일 플레이어들 간의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럴당 30~40달러에 석유를 생산과 수출하기 위한 최적화를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가운데 누가 얼마나 빨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체들도 이러한 수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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