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여 전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으로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와 압수수색 등을 벌이며 정준양 당시 회장 등을 압박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과의례였지만, 사정당국과 세정당국 등이 동시에 포스코를 건드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배경을 취재하던 중 포스코에서 몸 담았던 한 취재원이 전해준 말에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 정권이 포항은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로 각인시키려고 노력을 했는데, 시민들은 포항제철(포스코의 옛 사명)의 도시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박태준 설립자를 최고로 쳤다. 거기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집어넣을 틈이 없었단다. 정권이 얼마나 포스코를 싫어했겠느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후, 혐의 대부분이 무혐의로 판결났지만 정 회장 등 임직원과 포스코는 정부 어디에서도 피해를 보상받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을 조직의 측면으로 놓고 보면 비슷한 점들이 많다. 하지만 둘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국가는 ‘통치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定住)하는 다수인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며, 국가에 속해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이며,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를 기초로 하여 영리목적을 추구하는 독립적인 생산경제단위를 이루고 있는 조직’이 기업이다. 국가가 있기 때문에 기업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기업은 성장을 통해 국가경제의 성장에 기여한다.

국가와 기업은 가장 호흡이 맞는 파트너여야 하는 게 원칙이다.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사자성어도 원래는 정치와 경제가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최소한 대한민국 내에서 기업은 국가에 해로운 존재로만 부각되고 있다. 역사 서적이나 사극 영화나 TV를 보면,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얻은 장수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을 것이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누기 싫은 법이다. 중국을 1인 지배체제로 복귀시킨 시진핑 국가수석이 2인자인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견제하는 것을 넘어,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자 대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할 정도다. 권력은 그런 것인가 보다.

대한민국의 권력사를 놓고 보면 정권 때마다 정치 정권은 자신보다 국민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기업은 권력을 흔드는 암적인 존재로 봤고, 기업을 경제권력을 지목하고, 그들을 굴복시키고,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래서 비극의 대상이 된 기업들이 있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무수한 압박에도 견뎌낸 대상이 있다. 국내 1위 기업 삼성이다. 아무리 흔들고 짓밟으려고 해도 삼성은 버텼다. 정치 권력가들이 얼마나 약이 올랐을지 짐작이 간다. 진영을 망라하고 삼성을 무너뜨리는 게 권력의 공통 과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권력의 가지들이 삼성,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 됐다. ‘반드시 잡겠다’는 집념으로 죄명을 정해놓고, 5년여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괴롭혔다. 검찰이 스스로 만든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관행까지 깨고,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간 분쟁(ISD) 소송을 제기한 주장을 검찰이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9000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엘리엇에게 국민 혈세로 물어줘야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 부회장을 구치소로 보내겠다니, 엄청난 열정이다.

역시 확인이 어렵지만 현 정권이 이재용 부회장 기소에 집착하는 배경으로, 정권에 가장 위협적으로 여기는 대상이 삼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민인 기자가 보기에 삼성이 정권에 어떤 위협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는 현재가 아니더라도 삼성은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해야 할 의무의 상당 부분을 실천했고, 미진하거나 부족한 점은 이해관계자들의 자문을 얻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앞으로 5년 넘는 기간 동안 재판에 발이 묶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에 이어 앞으로의 5년을 더하면 무려 10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은 통하지 않는다. 1년도 너무 길다. 6개월, 3개월 마다 세상은 변한다.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뉴삼성’이 미래에도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데, 무려 10년을 재판까지 신경써야 한다.

참고로,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 전까지 총수로 현장에 있던 기간은 27년, 아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에게 맡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2년이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총수 재임기간은 25년,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3년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겪어야 할 10년은 그가 앞으로 이어갈 경영자로서의 기간 중 결코 짧지 않다. 아마도, 삼성을 무조건 잡겠다고 집착한 이들은 ‘반쪽의 성공’이라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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