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출 4.95조에서 계약 한 건에 7.9조
2G 이후 위축됐던 사업 5G에서 중흥 발판 마련
이재용 부회장의 투자·세일즈 노력 활발
매출 비중 1%, 스마트폰 이어 신성장 동력 유력
1위 화웨이 주춤한 가운데 영향력 확대 주력해야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공개한 5G 상용제품 풀 라인업.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공개한 5G 상용제품 풀 라인업. 사진=삼성전자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사업이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1위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체결한 7조9000억원 가량의 통신장비·네트워크 솔루션 수주 계약은 지난해 회사의 IM(인터넷 모바일) 사업부 매출 4조9400억원의 1.6배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올 상반기(1~2분기) 매출액 2조3300억원에 비해서도 무려 3.4배에 달한다.

통신장비 부문 단일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이자 하드웨어(HW)는 물론 운용 노하우 등 소프트웨어(SW)를 동반 수출한 쾌거다. 특히, 이동통신산업의 본거지인 미국의 통신 네트워크 사업에서 거둔 성과이며, 앞으로 추가 시장 참여 기회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G에서 개화, 표준 경쟁서 밀린 후 퇴보

1984년, 일명 ‘카폰’이라 불리는 차량전화로 시작한 한국의 이동통신 역사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시기는 1996년 2세대(2G) 서비스가 개시되었을 때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초로 2세대 이동통신 표준 가운데 하나로 채택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서비스를 상용화해 미국 등 해외시장에 기술과 서비스를 수출하며 세계 최대 이동통신시스템 이동통신글로벌시스템(GSM)과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3세대(3G) 이동통신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CDMA를 발전시킨 cdma2000 1x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와이브로(Wibro) 등이 GSM 방식을 진화시킨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됐다. CDMA에 비중을 뒀던 삼성 등 국내 통신장비 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GSM 부문에 집중했던 글로벌 통신장비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풍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의 화웨이까지 등장하면서 한국 통신장비 업체들의 기반은 갈수록 작아졌고,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 시기에도 국내 시장을 제외하면 국내업체들은 좀처럼 통신장비 시장에서 외연을 넓히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2016년 9월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를 방문한 마르크 뤼터(가운데) 네덜란드 총리와 함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2016년 9월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를 방문한 마르크 뤼터(가운데) 네덜란드 총리와 함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 5G에서 새로운 기회 잡다

2019년 5세대(5G) 서비스가 상용화 되면서 삼성전자는 기회를 잡았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 통신사들이 세계 1위 통신장비사인 화웨이의 장비를 배제하면서, 통신장비 수급 시장에 구멍이 생긴 덕분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 5G서비스를 상용화했다는 이미지에 더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것도 삼성 통신장비에 대한 신뢰성을 높인 계기가 됐다.

삼성이 4대 미래 분야에 향후 3년간 2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경쟁사들로서는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VIP 세일즈’를 통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 미국, 아시아, 유럽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리더들과 교류하며 5G 통신장비 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한-일 외교문제로 양국기업간 교류가 답보상태인 가운데에서도 2018년과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NTT도코모와 KDDI 등 현지 주요 이동통신사 경영진을 만나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 통신연구센터를 설립하고 5G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 활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6G의 지향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래 네트워크 경쟁 치열, 시장 점유율 높여야

단말기인 스마트폰과 달리, 통신장비는 한 번 설치하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끊김없이 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핵심가치로 꼽힌다. 특히, ‘연결’과 ‘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B2C 위주의 이동통신은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 등 B2B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만큼 네트워크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 분야의 패권을 차지한 기업이 향후 미래 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해야할 일은 아직 많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5G 기지국 점유율은 16.6%로 화웨이(32.6%), 에릭슨(24.5%), 노키아(18.3%)에 이어 4위였다. 화웨이에 비해 절반 수준이며, 에릭슨, 노키아 등 유럽 업체에 비해서도 상당히 처진다. 화웨이의 경우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사업이 위축되긴 했지만 이 문제만 해결되면 단숨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화웨이가 경쟁사들에 비해 제품 개발 기술과 양산 능력이 최소 6개월 이상 앞서고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 업체들의 경우 공통의 이익에 부합되면 언제라도 인수·합병(M&A)을 할 수 있어, M&A를 통해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꿀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로서는 경쟁사의 반격에도 시장을 지킬 수 있도록 점유율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전체 매출액에서 통신장비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 선에 머물러 있는 상황도 이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부터 삼성전자의 저력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 세계 유일한 종합 전자·ICT기업인 삼성전자가 각 사업부문의 역량을 모은다면 단기간 내에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치고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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