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해 비즈니스 환경 달라
현지 사무소 직원들, 연락하고 기다리는게 주 업무
‘보따리 무역상’이 양국 교역의 물꼬 터
현지 사회 리스크 여전…‘가능성 높은 국가’ 머물러

1989년 1월7일 국내 대기업인으로는 최초로 소련을 방문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수도 모스크바시에 도착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현대종합상사 40년 발자취
1989년 1월7일 국내 대기업인으로는 최초로 소련을 방문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수도 모스크바시에 도착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현대종합상사 40년 발자취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특히 수출 상담 상대방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소련에는 수출입을 담당하는 수백 개의 대외무역공단(FTO)이 있었으나 이들 공단에는 품목별 담당자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또 우리와 같이 대표 전화를 통한 교환 전화체제가 아니라 담당자별 전화번호가 모두 다른 직통 전화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거의 근무를 하지 않고 연간 기본휴가도 한 달이나 될 뿐 아니라 감기 정도만 걸려도 ‘전염’을 이유로 3~4일간 병가를 내고 쉬는 것이 보통이었다. 설사 통화가 된다 하더라도 사무실에서의 상담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1층에 마련돼 있는 상담실이 비어 있지 않으면 면담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모스크바 주재원들 사이에선 소련측과의 상담을 위해서는 우선 ▲전화가 걸려야하고 ▲담당자가 자리에 있어야 하며 ▲회의실이 비어 있어야 하는 3가지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겼다.

◆100번 이상 다이얼 돌려야 상담

또한 현지 상사 직원들은 담당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100번 이상 전화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전화가 안 돼 퇴근시간에 맞춰 정문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린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컵라면, 초코파이,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근근이 이어져 온 양국간 교류에서 보따리 무역이 시작된 것도 1990년대부터다. 보따리 무역상들은 가난한 러시아인들을 위해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 부산 등에서 싼 물건을 구입한 후 동해안 쪽 항구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가서 현지 거래상들에게 비싼 값에 넘기는 방법으로 소액 교역을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인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물건을 구매해 가는 추세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부산 시내에는 러시아 상인과 전문으로 거래하는 상점도 개설됐다.

국가명을 바꾼 뒤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원유가 상승 등의 호재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중국, 인도, 브라질과 함께 브릭스(BRICs) 국가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서서히 잠재력을 깨워 나가고 있다.

◆수교후 교역액·관광객 25배

한편, 올해는 한국과 러시아(구 소련)가 수교를 체결한지 3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86년 1억3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교역규모는 양국간 수교를 맺은 1990년에는 8억8900만 달러(수출 5억1900만 달러, 수입 3억7000만 달러)로 늘었다. 1991년에는 12억200만 달러(수출 6억2500만 달러, 수입 5억7700만 달러)에 달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러시아로 이름이 바뀐 뒤에는 1996년 37억7800만 달러(수출 19억6800만 달러, 수입 18억1000만 달러)를 정점으로 하락한 뒤 2002년부터 반등세를 보인 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2013년 226억4400만달러(수출 111억4900만달러, 수입, 114억9500만달러)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를 돌아서 2019년 223억4100만달러(수출 77억7400만달러, 수입 145억6700만달러)에 머물렀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국으로 성장했지만, 이 같은 교역규모는 당초 우리 기업인들이 품었던 ‘희망과 기대’에는 아직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독재화가 여전해 소수의 정치‧경제권력이 국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무역거래의 불안정이 여전한 데다가 사업 여건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리스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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