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취임사에서 다섯 명 언급, 감사의 마음 전해
밥상머리 교육으로 인생을 가르친 할아버지와 부친
현대차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 작은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CEO 정의선’ 도약 기반 만든 기아차 창업자 등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정주영‧정몽구’, ‘정세영‧정몽규’ 그리고 ‘김철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취임사를 통해 언급한 이름이다.

범현대가의 장손이자 장자로 일찌감치 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을 운명을 타고난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보다 경영권 승계 과정이 순탄했다. 현대그룹이 해체되면서 작은아버지와 사촌들이 독립했고, 정의선 회장에게는 형‧동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회장 취임 첫 메시지에 다섯 명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의미가 있다. 과거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사과,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각오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정의선 회장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인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아산은 생전 매일 오전 5시에 서울 청운동 자택으로 자식들을 불러 아침 식사를 했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한번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라는 족자가 걸린 자택에서 손자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장손인 정의선 회장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아산은 늘 정의선 회장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교육을 했는데, 정의선 부회장은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예절을 배워야 한다”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한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정의선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이면서도 가장 어려워한 아버지다. 정의선 회장은 사석에서 “제 역할모델은 현대자동차그룹을 일궈낸 정몽구 회장입니다. 정 회장께서는 현대차그룹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며 한국경제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로 정몽구 회장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공식 석상에서는 절대로 아버지가 아니라 ‘회장님’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정몽구 명예회장 밑에서 현대차그룹의 시작과 현재를 지켜봤다. 2000년 그룹 출범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5년에 세계 5위의 품질을 확보하고 2010년에는 5대 자동차업체로서 거듭나도록 노력하자”라는 ‘GT5 비전’을 선언했을 때, 정의선 회장은 다른 경영진들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일이라고만 여겼단다. 하지만 강산이 한 바퀴 변한 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톱5 자동차회사로 거듭났다. 앞으로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그려나갈지가 기대된다.

정의선 회장이 작은 할아버지인 정세영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전 현대그룹 회장‧현대자동차 회장)과 작은 아버지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전 현대자동차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떠올린 것은 성장시키는데 이바지한 공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초창기 현대차의 기틀을 잡아 순수 국산 승용차인 ‘포니’ 개발을 주도했다. 별칭이 ‘포니 정’이었을 정도로 큰형인 아산보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훨씬 많았다. 정몽규 회장도 현대차 경영에 참여해 회사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주역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96년 정몽구 회장이 현대그룹 총수로 올라서면서 현대차와의 인연을 끝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 조짐도 엿보였으나 아산의 한마디에 정세영 명예회장은 깨끗이 물러났고,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아버지 못지않았던 정몽규 회장도 떠났다. 두 사람의 용퇴 덕분에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는 200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론한 ‘김철호 회장’은 기아자동차 창업주다. 김철호 회장은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선구자로 불린다. 그가 이끌었던 기아차는 1962년 일본의 마쓰다와 기술 제휴해 생산한 배기량 365cc의 삼륜 화물차 ‘K-360’을 출시했는데, 이는 한국 기업이 만든 최초의 자동차였다. 1974년 4월 일본 마쓰다의 패밀리아를 기초로 제작한 세단 ‘브리사’는 한국 최초의 승용차로 기록되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부도를 낸 기아차는 1999년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으로 인수됐고, 이듬해 현대차그룹이 분리해 출범할 때 현대차와 함께했다. 지금은 그룹의 양대 주력사로 성장한 기아차는 정의선 회장이 처음으로 대표이사에 오른 회사이기도 하다.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정의선 회장은 외부 인재 영입, 디자인 특화 등 기아차의 장점을 진화시켜, 기존에 강점을 보였던 SUV 라인업을 강화하고, ‘K시리즈’로 대표하는 세단 승용차 라인을 성공시켜 최고경영자(CEO)로서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의도했건 아니했건, 그동안 현대차그룹 내에서는 현대차로의 인수 전 기아차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창업주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기아차 과거의 영광을 비추었다. 그러면서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임을 강조했다.

이들 다섯 사람은 2020년 10월 14일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의 지금을 있게 해준 선배이자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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