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따라 조립공장중 유일 생존
신진자동차와 제휴 버스 생산, 휠디스크 국산화
쌍용그룹에 인수되어 ‘코란도’ 등 판매 확대
쌍용그룹 해체후 대우로 갔으나 역시 무너져

동아자동차(화동환 자동차의 새 사명)는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되어  회사 이름을 쌍용자동차로 바꿨다.  사명 변경 후 회사가 언론에 게재한 인쇄광고.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동아자동차(화동환 자동차의 새 사명)는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되어 회사 이름을 쌍용자동차로 바꿨다. 사명 변경 후 회사가 언론에 게재한 인쇄광고.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수출 성과를 올린 후 회사는 오히려 험난한 여정을 밟게 된다.

하동환 자동차는 1962년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리계획에 따라 선정된 잠정 조립공장중 하나였다. 자동차공업보호법 부칙에 따르면 잠정 조립공장은 1967년 12월 31일까지만 자동차를 조립 생산할 수 있었다. 시효 만료일이 다가오자 정부는 1967년 12월 28일 제64차 경제장관회의에서 논의한 후 1968년 1월 13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기존 자동차 제조공장(기아산업‧신진자동차‧현대자동차‧아세아자동차)이 국내수요를 충족시킬 때까지 잠정 조립공장을 선정해 한정적으로 자동차를 조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방안 덕분에 1968년 3월 7일자로 하동환 자동차 등 11개 업체, 같은 달 23일자로 한국 화물자동차 등 2개 업체, 4월 6일자로 화신택시 등 모두 14개 업체가 조립공장으로 재선정됐다.

그러나 1972년 1월 20일 상공부는 신진, 현대, 아시아, 기아 등 4개 업체를 제외한 군소 조립공장의 폐쇄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해부터 미군의 잉여물자 불하품으로 자동차를 조립했던 14개 조립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등록이 불가능했다. 조립공장의 생존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갈 순간이었는데 유일하게 하동환 자동차는 살아남았다.

하동환 자동차는 1968년 잠정 조립공장 재선정시 정부의 권유에 따라 신진자동차와 업무제휴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양사는 전국의 버스 시장을 양분해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등 5개 시도에는 하동환 자동차가 공급하되 신진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토록 하고 그 이외의 지역은 신진이 직접 공급토록 했다. 이로 인해 하동환 자동차는 버스 부문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붙이지 못하는 주문자상표부착(OEM) 업체로 전락했지만 결과적으로 잠정 조립공장으로 재선정된 14개 업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점에서는 행운이었다.

여건 변화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웠던 하동환 자동차는 방향을 전환하여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휠 디스크의 생산에 나섰다. 1970년 2월 일본의 토피공업과 기술제휴를 통해 휠 디스크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어 1971년에는 이를 일본과 동남아지역에 수출하고 1972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중대형 휠 디스크의 완전 국산화를 달성했다.

이 무렵 경인 및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을 계기로 건설장비 등 각종 특수차의 수요가 크게 늘어 났는데 대부분 수입에만 의존한 상황이었다. 하동환 자동차는 1975년 9월 미국 더러사와 트레일러, 10월에는 일본 콩고사와 믹서트럭, 벌크 시멘트 특장차(BCC)에 대한 기술제휴를 추진해 각각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하동환 자동차는 국내에서 특장차 전문 업체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고, 1977년 동아자동차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동아자동차는 그러나 1981년 2월 28일 전두환 정부의 ‘자동차 합리화 조치’의 철퇴를 맞아 특장차 생산만을 전담하게 됐다. 1984년 거화 지프를 인수해 민수용 지프 승용차인 ‘코란도’를 생산, 사업을 확장하는데 성공했지만 2년 후에는 1986년 쌍용그룹으로 경영권을 넘기면서 쌍용자동차로 상호를 바꾸어 달게 된다.

쌍용그룹 소속의 12년간 쌍용자동차는 고유 모델인 코란도 훼미리와 무쏘, 무쏘 SUV, 렉스턴, 뉴체어맨, 로디우스 등을 출시하며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부담으로 작용한데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모기업인 쌍용그룹이 부도 났고, 1998년에는 대우로 회사가 넘어갔다. 그리고 1년 만에 또 다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자동차와 함께 워크아웃 대상 기업으로 지정됐으며, 2000년에는 대우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쌍용자동차에 처음으로 손을 내민 것은 중국의 란싱그룹으로, 쌍용자동차 채권단은 2003년 12월 중국 란싱그룹과 매각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4개월여 만에 매각은 무산됐고, 란싱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어 채권단은 같은 해 7월 중국 상하이기차그룹과 매각 MOU를 체결, 르노 삼성, GM대우에 이어 세 번째로 외국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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