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잘 모르는 기자가 그래도 중학교 도덕 과목과 고등학교 윤리 과목 때 배운 것 중 기억하는 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정-반-합(正-反-合), 즉 ‘삼지성(三肢性)’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검색해 보니 ‘정’은 단정적으로 주장되는 기본명제이며, ‘반’은 그것에 대립하는 명제이고, ‘합’은 정과 반을 고차원에서 종합한 명제다. 정·반·합의 도식에서 합은 정과 반의 외적 통일 내지 절충으로 보이기 쉽고, 또한 그 도식에서는 복잡하고 다의적인 변증법이 대단히 도식적·형식적으로 생각되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헤겔 변증법에서는 정이 자기의 모순에 의해 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따라서 합 역시 정과 반의 내부로부터 도출된다고 한다.
어쨌건, 무식한 식견으로 풀어보자면, 누군가 사실에 대한 견해를 내놓으면, 이를 옳다고 보지 않는 다른 이가 다른 시각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토론을 벌인 뒤 양측 의견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궁극적인 결론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라고 본다.
정-반-합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상대방 의견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기반이 돼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내가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고민해서 얻은 견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터.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제시한 양측의 의견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대화가 이뤄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흑백논리, 양극화를 넘어선 ‘초(草) 이분법 사회’가 된 듯하다. 초 이분법은 좌우 논쟁의 범위보다 크고. 진영과 계층, 인종 같은 과거의 갈등 유형과도 사뭇 다르다. 그래도 그때는 최소한 ‘정’에 해당하는 명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것 같다. 최소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 같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정’이라고 하는 게 정말 ‘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은 ‘정’이라고 내놓지만 ‘반’의 과정을 건너뛰고 ‘합’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대부분이다. 처지가 다른 이들은 이를 ‘반’이라고 반격하니, ‘반’으로 시작해 또 다른 ‘반’으로 이어지는 ‘反-反-反’의 세상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TV 토론에 나온 양 후보의 주장과 의견은 색깔이 너무 확연해 섞이질 않는다. 여론 지지층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 무조건이고, 상대 후보의 좋은 공약 내용도 무시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선과 총선 때에도 지역 간 표심은 극명하다. 누가 더 좋다고 해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몰표를 준다. 초 이분법 사회가 지속하면 굳이 상대방을 포용하려고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될 거, 내 지지층만을 위해 목소리를 드높이면 정권도, 의원 자리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을 테니까.
한 공인이 잘못했으면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면 끝날 일을 요즘은 “전에 누구는 더 나쁜 짓도 했는데 그는 그래도 깨끗하다”라고 맞선다.
기업 활동, 부동산 대책 등 경제 이슈도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이 그동안 ‘정’이라고 내놓은 명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사실상 ‘합’에 해당하는 ‘반’을 내놓는다. 더 나아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상하고 내놓은 ‘정’에 대해 기업들이 ‘반’을 제시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기업이 과거에 한 행동에 대해 현재의 시각으로 잘못이라고 꼬집는 이들에게 “당시의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라고 설명하면 무조건 변명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단죄하려 한다. 그런데 유력 정치인 출신 현 정부의 수장은 자신의 청문회에서 과거 학력 문제를 지적하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그때의 사회적 개념과 오늘날 21세기의 개념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응수했다. 기업의 말은 틀리고, 그 정치인의 말은 당연하다. 수긍을 못 하는 이들은 “말해봐야 뭐해. 입만 아프지”라며 대화를 중단한다.
이러한 의식은 일반인들에게도 주입된 것 같다. 주변 사람들과도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입장을 배려하기보다는 인연을 끊어버린다. 쉼표 역할을 해줄 중간자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더 살기가 어려운가 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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