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 역사를 되돌아보면 업종마다 눈에 띄는 맞수 기업이 있다.

운수업에서는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한 해인 1945년 정석 조중훈 창업주가, 후자는 이듬해 금호 박인천 창업주가 각각 운수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4명의 아들, 즉 오너 2세들이 창업주 부친을 도운 점도 일치한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오너 3세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1975년생으로 동갑이다.

운수업을 주력으로 성장해오던 두 그룹은 1969년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민영화한 대한항공을 출범시키고, 1988년 금호그룹이 정부로부터 제2 국적 항공사로 선정되어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는 등 항공운수업을 통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업계에서는 두 그룹을 맞수라 부르며 많이 비교하곤 한다. 사업 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두 그룹의 성장 곡선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성장을, 불황일 때는 위축됐다. 경쟁자가 있어야 사업을 더 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진그룹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강점을 키우고, 약점을 보완해왔다. 특히 항공운수업은 두 그룹이 결정적으로 사업이 겹치는 분야였다. 제1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의 한진그룹은 후발주자, 특히 금호그룹의 진출을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했고, 금호그룹은 전라도 지역 기반 기업에 사업권을 내줘야 한다는 정치적 논리에 부응하며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 비방전이 끊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면서 다수의 대한항공 출신 인력들을 스카우트해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후에도 운수권 배분을 비롯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놓고 양사는 날을 세웠다. 서로가 상대방이 자사를 흉내 낸다며 비난하지만 라이벌 관계가 회사의 역량을 키우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이바지 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양 그룹의 라이벌 관계가 무너진 것도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 모두가 위기에 몰리면서였다. 시작은 오너 일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의 사건을 같은 시기에 벌이면서부터다. 지난 2018년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비도덕적 사건은 모그룹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사건 발생 후 오너 감싸기 위주로 안이하게 대처해 공분을 샀다. 끝까지 회사를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직원들까지 총수의 퇴진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다.

이 여파로 오너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리고, 사업 부진으로 그룹이 좌초될 위기까지 몰렸다. 2019년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별세 후 오너 3세인 장남 조원태 회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갈등이 본격화되어 자칫하면 그룹이 쪼개질 상황까지 몰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안고 박삼구 회장이 퇴진하면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채권단은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해 HDC현대산업개발을 인수 대상자로 선정했다.

시간이 흘러 양 그룹의 위기는 일단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면서 맞수 관계는 단절되거나 희석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상황을 대반전 시켰다. 항공운송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경영난에 빠졌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채권단으로부터 긴급 경영자금을 수혈받았고, 아시아나항공은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자력 생존이 불투명해졌다.

최악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이라는 ‘통합 카드’를 꺼냈다. 사실 2019년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 찾기가 시작될 때부터 업계에서는 양사 간 통합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그러나 끝이 안 보이는 자중지란에 힘을 쏟고 있는 한진그룹이 과연 감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때문에 카드를 꺼낼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는 지체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에 양사는 드디어 통합을 결정했다. 양 그룹이 태동한 지 74년, 두 항공사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 지 32년 만이다.

이번 결정이 어떤 효과를 실현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속 중이고, 그에 따라 항공업 위축도 이어져 글로벌 항공사 구조조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르지만 닮은’ 한진과 금호의 DNA가 결합해 이러한 위기에 어떠한 시너지를 낼 것인지는 조원태 회장의 지도력에 달려 있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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