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노조 파업을 근거로 중국 등 아시아 철수 가능성 시사
노조 “대정부 투쟁 등 장기전에 대비할 것”
산은의 견제 방안 미비, 호주 사례 등으로 한국 철수 가능성 높아
철수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현실적

한국지엠 노사 일행(사진 오른쪽부터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 김선홍 창원사업본부장,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김성갑 지부장)이 지난 8월 21일 창원 사업장 내 신축 중인 도장공장의 공사 현장을 방문해 현장 안전과 공사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지엠 제공
한국지엠 노사 일행(사진 오른쪽부터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 김선홍 창원사업본부장,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김성갑 지부장)이 지난 8월 21일 창원 사업장 내 신축 중인 도장공장의 공사 현장을 방문해 현장 안전과 공사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지엠 제공

[서울와이어 조채원 기자] 본사 차원에서 ‘한국 철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GM이 파업으로 맞서는 노동조합을 빌미로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던 다마스와 라보 등을 단종시킨 한국지엠 사측은 핵심 사업장인 부천공장 가동 중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 상태다. 생존을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은 한국지엠이 날이 갈수록 생산 차종을 축소하고, 사업장 가동을 중지하거나 폐쇄하는 한편, 당초 약속한 생산 물량 배정도 수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에 노조는 사측이 장기적인 안목의 사업 유지 계획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2016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파업을 이어가고 있으나, 사측은 오히려 노조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며, 철수의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

여론은 일단 노조 파업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글로벌 산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으며 서로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한국지엠 노조가 또다시 파업을 감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파업, 집단 이기주의인가, 이유있는 반항인가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7월 22일 상견례에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진행해왔다. 노조는 기본급 월 12만304원 인상, 통상임금의 400%에 600만원을 더한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2년 주기 임금협상을 조건으로 700만원의 성과급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1년으로 임금협상 주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아울러 노조는 임금 인상과 함께 부평2공장에 대한 신차 배정을 요구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30일을 시작으로 하루에 4시간씩 부분 파업을 단행하는 한편 5영업일간 쟁의행위(잔업‧특근 거부, 부분파업)를 진행했고, 회사는 투자계획 보류, 사업장의 중국으로 철수 검토 등으로 맞불을 놨다.

사측이 보류한 투자계획은 9월 21일 언급했던 부평1공장 투자계획으로, 투자 규모는 1억9000만달러(약 2115억원)에 달한다. 신차 생산을 위해 설비 개선에 쓰겠다는 명목이었다. 

한국지엠측은 “노조의 쟁의행위 때문에 7000대 이상의 생산 손실을 입었고 유동성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부평공장 투자와 관련한 비용 집행을 보류하고 재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파업의 목표를 ‘대정부 압박을 통한 철수 방지’라고 주장했다. 김성갑 한국지엠 노조위원장은 최근 조합원 공청회를 열고 GM의 한국 철수설에 대해 “현장의 다양한 우려를 알고 있다”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대정부 투쟁을 철저히 준비해 장기전에 대비하겠다”고 말해 노조의 투쟁 목적이 ‘대정부 투쟁’임을 천명했다. 대주주 산업은행(지분 17.02%)에 책임을 요구하고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고자 하는 의도를 전한 것이다.

◆쉬쉬하던 ‘철수’ 발언 노골적, 본사 끊임없는 경고
불과 2년여 전까지 한국지엠은 물론 미국 GM 본사도 한국내 생산 사업장 철수를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GM 본사 최고경영진들 사이에 “한국은 큰 딜러시장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철수’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다.

당장 사측은 사업장 폐쇄, 생산차종 축소와 함께 미국 생산 모델의 수입 판매를 늘리고 있다. 쉐보레 브랜드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현대‧기아자동차의 동급 모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져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니 미국에서 들여온 픽업트럭과 소형 SUV를 앞세우고 있다. 또한 쉐보레와는 별도로 관리해 오던 고급 브랜드 캐딜락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지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업계에서는 이 또한 GM의 출구전략의 일환이라며 우려의 시각을 보이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한 산은, 철수 막을 수 있을까
KDB산업은행은 2018년 4월에 한 한국지엠과의 합의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GM의 한국 철수를 막았다. 지난 2018년 산은은 한국지엠의 회생에 GM본사가 동참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7억5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에 GM 본사는 “신차 개발과 설비투자를 위해 28억달러를 투자하고, 신차 2종을 배정한다”면서, 5년간 신차 15종을 출시해 경영정상화를 앞당기겠다고 했다. 생산시설은 최소 10년간(2028년까지) 유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산은이 공적자금을 투입했어도 대주주로서 GM의 철수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2대 대주주이지만 경영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실질적으로 제지할 권한이 부재하다. 산은은 2017년 보고서에서 GM이 지분처분제한 해제는 산은이 주총 특별결의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한국지엠에 채권이 없어 채권자로서 한국지엠 경영에 관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8년 2월 GM은 한국지엠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했고 같은 해 4월에 산은과 GM의 합의가 타결됐다.

군산 공장 폐쇄 이후 진행한 합의에서 산은은 자금지원을 대가로 한국지엠이 향후 10년간 한국에 체류할 것과 20%가 넘는 자산 매각을 금지하는 비토권을 약속 받았다. GM의 회생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꼽혔던 신차 배정도 약속받아 부평공장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창원공장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 각각 배정됐다. 

그러나 2018년 10월 열린 한국지엠 주주총회에서 산은의 비토권은 한계를 드러냈다. 당시 주총에서는 “한국지엠을 생산‧판매를 전담하는 존속법인과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신설법인(가칭 GM테크니컬센터 코리아)으로 분할한다”는 내용의 안건이 통과됐다. 법인분할은 R&D(연구개발)만 남기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 산은이 막았어야 했지만 노조가 부평 공장을 점거하면서 산은은 주총 참석은 물론, 비토권 행사도 못했다. 

산은이 주총에 참가했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산은이 보유한 비토권은 한국지엠과 산은이 정한 주총의 ‘특별결의’ 사항에서만 인정되고 ‘일반결의’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데, 한국지엠은 법인분할 문제를 ‘일반결의’로 간주했다.

비토권의 성격 또한 일반의 이해와 달랐다. 비토권은 법으로 인정되는 권리가 아니라 주주간 계약에 따라 생기는 권리로, 계약을 위반해도 이미 이뤄진 결의를 되돌릴 방안은 없으며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다. 한국지엠이 손해배상을 감수하고 비토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산은이 취할 수 있는 방도는 없는 셈이다. 

◆호주 철수 사례 한국에도 벌어질 가능성 높아
GM이 공적 자금을 받고 해외 시장에서 철수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호주 시장 철수가 대표적이다. 2017년 10월 미국 GM은 호주에서 69년 동안 운영해오던 생산 공장을 폐쇄했다. GM이 공장 철수 방침을 결정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당시 GM호주 법인은 최저임금이 미국의 2배를 웃도는 등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GM은 호주 정부가 지원금을 끊자 곧바로 철수를 결정했다. 호주 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주요 자동차 제조회사에 지원금을 줬는데 실효성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자 지급을 중단했다. GM은 호주 정부로부터 2001년을 기점으로 12년 동안 1조700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 시장은 GM이 호주 철수를 결정했던 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지엠은 철수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GM 본사는 호주 공장 폐쇄를 결정하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We're here)”는 TV 광고를 호주에 내보냈다.

호주 사례에서처럼 GM은 인건비를 표면적인 이유 삼아 한국 철수를 진행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스티브 키퍼 GM 수석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18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지엠 노조가 생산 물량을 인질로 삼으면서 심각한 재정 타격을 주고 있어 한국지엠에 투자를 하기 어렵다”며 “수주 안에 노조 파업이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업이 한국지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GM에게는 중국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연간 500만대를 생산할 방안도 있다”고 강조했다. 

◆GM 철수, 대책 마련이 현실적
GM이 한국 시장을 버리고 공적자금만 '먹튀'할 가능성도, 유인도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철수하기 전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도 외국기업의 ‘먹튀’ 문제는 난제로 꼽혔다. 2004년 쌍용자동차 사태(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자본‧기술만 흡수하고 법정관리를 신청) 이후 외국기업의 ‘먹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기업의 도덕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생존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 여부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산업은행의 감시 기능 외에도 국내에서 가동하는 공장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M의 입장에서 보면 해외 생산기지에 물량을 할당할 때 생산성을 최우선적으로 감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국지엠이 자체 생존력을 찾지 못한다면 자금 지원은 일시적인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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