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와 통상협상 (상)
1986년 GATT 각료회의 개최지 서울이 가장 유력
당시 정부가 “아시안게임과 중복된다”며 거절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지금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통상용어가 FTA(자유무역협정)과 도하개발아젠다(DDA)지만, 사실 이보다 더 큰 충격을 던져준 단어는 바로 ‘우루과이라운드(UR)’였다. 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의 명칭이 ‘서울라운드(SR)’가 될 뻔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1986년 9월에 열린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각료회의는 당초 서울이 가장 유력한 개최지로 꼽혔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같은 달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이 회의의 개최를 거절, 결국 우루과이의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에서 열렸고 그 이름도 ‘우루과이라운드’가 됐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던 아시아의 한 모범적인 개발도상국으로 선진국 시장에서 특혜관세 등의 혜택을 받으며 순항을 거듭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상마찰이라는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대미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 등 수출의 급신장이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서울이 우루과이라운드를 출범시킨 GATT 각료회의 개최를 위한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1984년 통상장관회담만 30회 열려
세계 각국의 통상장관들이 수시로 서울에 날아와 회담을 벌였고 한국의 통상 당국자들은 한해에도 수십 차례씩 외국을 드나들며 협상 전선에 나서야 했다. 1982년 5월 상공부 장관에 취임한 고 김동휘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1년여 사이에 5번의 해외 출장을 가야 했다. 출장기간 동안 그는 네 차례의 국제기구회의 참석과 세 차례의 통상장관회담을 치렀다. 1983년 8월, 불과 2개월 만에 다시 출장길에 나선 김 장관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각각 통상장관회담을 1주일간 가졌다.
제12차 한·일 각료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시드니에서 곧바로 도쿄로 날아온 김 장관은 당시 우노 소스케 일본 통산상을 상대로 별도의 통상장관회담 설치를 위한 끈질긴 설득작전에 들어갔다. 이들 간의 개별회담이 길어져 전체회의가 2시간이나 연기되기도 했다.
김 장관의 끈기는 그날 저녁의 일본 외상 주최 만찬장에서, 그 다음날 우리측 주최 오찬장에서, 어떤 때는 회의장 복도에서도 이어졌다. 이를 통해 김 장관은 일본측이 그토록 완강히 반대하던 양국 통상장관회담의 개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야 말았다.
김 장관은 그러나 귀국 날 아침 실무자로부터 회의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코피를 흘려 회의 자료를 모두 적시고 말았다. 보고를 위해 참석했던 실무자들은 “내가 너무 무리했는가 보지”라고 말하는 김 장관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함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미국이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덤핑제소,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 보험시장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미 통상법 301조 발동 위협 등 통상압력의 도를 높여가면서 통상 당국자들은 더욱 바빠졌다.
더욱이 미국의 이 같은 분위기가 EC(유럽공동체, 현 유럽연합) 국가들에까지 확산되고 국내에서도 당시 미국과 일본에 편중됐던 수출시장의 다변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통상장관회담은 1984년 한 해에만 30회가 열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1년 이후 한 해 동안 통상장관회담이 20회 이상 열렸던 해만도 절반이 넘는 7년이나 된다. 이 기간 중에 열렸던 통상장관회담은 모두 213회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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