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송 기업이 이익을 거두려면 운용하는 운송 수단 화물칸에 늘 화물을 채우고 이동해야 한다.

자동차이건 트럭이건, 항공기이건, 선박이건, 철도이건 무엇과 상관없이 실어나르는 사람, 화물이 돈(운송료)이기 때문에 운송업체는 운송 수단에 화물을 싣고 다녀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특히, A 지점에서 화물을 싣고 B 지점으로 갔다면, B 지점에서 A 지점으로 돌아올 때도 화물이 실리는 게 이상적이다. 오고 가는 과정에서 모두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다면, 운송업체는 동일한 운송 수단과 인력, 연료비용으로 두 배의 요금을 받을 수 있다. 한 노선을 왕복할 때 확실히 오가는 길 모두 화물을 실을 수 있다면, 운임을 크게 올리지 않아도 운송업체들은 일정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화주들 – 특히 자주 운송을 맡기는 단골 화주들 – 에게 할인된 요금을 제시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해 록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래도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는 경기가 호황일 때나 가능하다. 불황일 때에는 갈 때만 화물을 싣고, 올 때는 화물칸을 비운 채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화물칸이 비었다는 건 그 운송 수단은 한 푼도 이익을 얻지 못하고 비용만 축냈다는 것을 뜻한다. 기대수익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돌아올 때 드는 비용을 상쇄하려면 운임을 올릴 수밖에 없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현실에서 원하는 만큼 가격을 높일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 운송업체는 운송 수단을 운용하면 할수록 수익이 줄어들거나 손해로 전환하는 등 채산성이 악화하여 노선에 투입하는 운송 수단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어나를 화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십중팔구 문을 닫는다.

화주들도 인상된 요금에 부담과 불만은 커지면서도 제때 화물을 실을 운송 수단을 섭외하지 못해 납기가 늦어져 클레임을 물어야 하고, 더 최악의 경우 운송을 못할 경우 판로가 끊겨 폐업에 이를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미주항로에 화물을 실어나를 화물선이 모자라 수출화주들이 아우성이라고 한다. HMM과 SM상선 등 국적 해운사가 임시 선박을 투입했고, 일부 해외 선사들도 한국 화물을 실어나르겠다고 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수출화주들은 화물선 섭외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선박 섭외는 안 되는데 운임은 폭등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에서 회원사들에 매월 제공하고 있는 ‘시장 참고운임’ 통계에 따르면, 북미 항로(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LA) 및 부산~롱비치) 수출 참고운임은 11월 TEU(6m 길이 컨테이너)당 3160달러, FEU(12m 길이 컨테이너)는 3950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참고운임은 무역협회가 협력 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장 평균 운임으로, 운임 및 각종 부대비를 포함(all-in rate)한 가격, 즉 화주와 선사가 운송 협상을 진행할 때 참고하는 가격이다. 2010년 조사 개시 이래 사상 최대치였던 9월(TEU 3286달러, FEU 4116달러)을 정점으로 2개월 연속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주항로 선박 부족 현상을 직접 유발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었다. 상반기, 코로나19로 국제 교역이 마비 상태에 빠지자, 화물선 화물칸에 실어야 할 화물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항만이 폐쇄됐다. 화물선에 화물을 못 실으니 해운사의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했고, 운항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되자 최소한의 노선만 남겨두고 선박 운항을 중단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등도 선복량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해운사들은 노선도 조정을 했는데, 상대적으로 물동량이 많은 중국은 살리고, 한국은 제외했다. 부산을 국제 해운 물류의 허브로 양성하겠다고 정부가 수십 년에 걸쳐 공을 들여왔지만 코로나19가 닥치자 글로벌 해운사들은 거점 항만에서 부산을 제외했다.

하반기 들어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싣고가는 화물이 늘었지만, 선박뿐만 아니라 컨테이너도 매우 부족한 상태다. 임시 선박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HMM이 3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임시 노선 투입의 어려움이 언급되어 있다, 즉, 선박이 기존에 배치된 노선을 공동운항하는 선사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후 선박을 공유하지 못하는 점으로 인해 합의가 쉽지 않다. 기존 노선을 이용하던 화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시 다른 노선에서 소규모 선박 등을 재배치하는 등의 수고들이 필요하다. 결국, 단 한 척의 임시 선박 투입을 위해 선사가 운영하는 100척에 가까운 선박의 모든 기항 일정, 항로 계획, 하역 순서 등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해운업체, 더 나아가 해운업 생태계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중장기 상황에 맞춰 조정된 가운데, 우리가 늘리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HMM은 가용 선대를 모두 계획에 맞춰 해당 노선에 투입한 상황이라 임시 선박을 용선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반기 미주노선 물동량이 늘어나자 “선박 고장, 수리 등으로 운항이 불가능한 선박 외에는 모든 선박이 항로에 투입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 선박을 임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더군다나, 선박의 일정이 변동되면 기항하는 항만과의 일정 재협의도 필요해 제시간에 선적되지 못한 화물이 발생하고, 이 경우 화물의 보관 및 관리의 부담도 발생한다. HMM과 SM상선 등은 이 모든 불합리한 사정을 무릅쓰고 임시 선박을 마련해 국내 기업이 생산한 대미 수출 물품을 싣고 미국으로 출항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이후 정기노선에 대한 선복량을 늘리는 것은 주저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높은 선가를 배경으로 선사들이 수익 극대화를 노린 처사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한진해운 파산이 현 상황을 일으켰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는 운송업의 본질에서 문제의 원인을 보고자 한다. 우리 수출화물을 실어나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지만, 지금 태평양을 오가는 해운화물 물동량의 추이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HMM이 투입한 임시 선박은 부산항에서 미국 LA 항으로 출항할 때에는 만선이다. 하지만 LA 항에서 부산항으로 돌아올 때는 화물칸이 텅텅 빈 채로 돌아온다는 점을 주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국으로 건너가 쌓여있는 빈 컨테이너라도 싣고 오면 최소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으냐는 말도 한다. 하지만 HMM에 문의해 보니, 정기노선에 투입된 컨테이너선조차 부산항으로 돌아올 때 화물 적재율이 평균 60% 내외이기 때문에 임시 선박에까지 돌아갈 적재 물량이 없단다. 운임 수준이 높아 손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지는 않다는 게 HMM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현재 미주노선 해운 운임 급등의 원인은 선복량 부족과 더불어 미국에서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로 싣고 오는 물량이 적어 지금 책정된 미주노선 편도 운임이 과거 왕복요금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수출이 증가했던 2016년과 2017년의 해운 운임 추이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2016년 11월 무협이 제공한 부산~LA 시장 참고운임은 TEU당 1680달러, FEU당 2100달러였으며, 2017년 11월에는 각각 1400달러, 1700달러로 올해 11월에 비해 약 절반 수준이다. 편도 운송 문제는 비단 HMM뿐만 아니라 글로벌 선사들에게 모두 닥친 현상이다. 쌍방간 무역이 회복돼야 해결할 수 있는데, 코로나19가 내년에도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니, 운임 상승세는 앞으로도 지속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HMM이 현대중공업에 발주한 8척의 1만6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 가운데 일부를 조기 인도받아 주요 항로에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올해 인도한 2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연이은 만선 사례를 경험한 뒤, 새 선박만 먼저 투입하면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최근의 선복량 감소‧운임 급등은 코로나19 등으로부터 시작된 국제 무역 프로세스의 좌초에서 비롯된 시장 상황의 문제라고 보고, 거시적 시점에서 판을 들여다 봐야 한다. 한쪽은 발산만 하고 다른 한쪽은 수렴만 하는 편도 위주의 교역 행태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기껏 선복을 채웠는데 교역량이 끊긴다면? 애초 수립한 계획을 어겨가며 거액의 운용비가 드는 선박을 대거 투입한 HMM 등 국적선사들은 그나마 나아진 상황에서 다시 위기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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