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첫 유조선 건조기 - (3)
‘현대정신(現代精神)’으로 모든 걸 새로 보다
노력한 실패에는 모든 걸 덮어···창의성 강조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8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8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경영진의 강력한 추진력 없이는 시행착오와 난관을 극복하고 납기를 맞추기란 불가능했다.

아산은 부득이한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회사가 아무리 큰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잘 해보려다가 생긴 시행착오였다는 판단이 서면 전혀 문책하지 않았다. 때문에 현장 책임자들은 자신감을 갖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1973년 6월 1호선 선도부 블록 이동 작업은 특기할 만하다. 울산 조선소는 아직 도크가 완공되기도 전에 선박 건조작업에 착수, 공장과 야드에서 선체 블록을 제작했다. 문제는 제작이 끝난 블록을 깊이 12m의 도크 바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골리앗 크레인 설비공사가 끝나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부품은 거의 인력으로, 큰 소조립품은 트레일러를 동원해 옮겼다. 선수부 블록은 무게만 50t 이상 이었다. 인력이나 트레일러로는 옮길 수 없었다. 골리앗 크레인이 설치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면 석 달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공기 단축은 커녕 납기 내에 배를 만들기도 불가능했다.

이때, 아산이 고정관념을 깨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선수 블록을 트레일러에 실은 후 뒤에서 불도저를 당겨 속도를 줄여가면서 도크의 경사로를 내려가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아주 쉽게 도크 바닥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현장팀 역시 독자적인 방식을 개발,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골리앗 크레인 작동신호 방식도 새로 개발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이 일본식이어서 그대로 사용하기가 애매하고 또 어려웠다. 현장팀은 우리말 용어를 연구해 독창적인 신호방식을 만들어 회사의 승인을 받아 실용화했다. 스톱(STOP)이라는 말 이외에는 ‘올리고’, ‘내리고’, ‘동으로’, ‘서로’ 등 모두가 우리말이었고, 따라서 작업의 능률도 크게 향상됐다.

경비 절감을 위한 노력도 다각도로 진행됐다. 선체건조부에서는 직경 4mm, 길이 45cm의 용접봉을 매일같이 하루 50만개씩 쓰고 있었다. 초기에는 낭비도 많았다. 용접봉을 사용하다가 10cm 정도 남으면 버리고 새것을 사용하기 예사였다. 건조부는 ‘꼬투리 줍기 운동’을 전개했다. 작업시간이 끝나면 꼬투리를 주워 일주일간 모았다가, 매주 수요일이면 종류별로 나눠 다시 만들어 사용했다. 1973년 9월 용접봉 품절로 전 조선소가 타격을 받았을 때에도 건조부는 무난히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선박 건조에 소요되는 주요 기자재 구입 계약은 1972년 6월에 일단락됐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선박 건조에 착수하면서 겪기 시작한 각종 시행착오로 추가 구입을 해야 했고, 특히 추가 구입자재일 경우 하루라도 빨리 구해 본국으로 보내야 했으므로 런던지사와 도쿄지사는 밤낮이 없었다.

1, 2호선 건조시 엔진 안의 고압 파이프를 설계대로 연결하지 못해 재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마다 런던지사는 부품을 발주, 배와 비행기를 총동원해 본국으로 수송해야 하는 시간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이 같은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지 당시 파리에 취항하던 대한항공은 운송물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지경이었다.

한번은 선박에 장착할 보일러가 폭발해 이 안에 들어갈 파이프 패널을 전면 교체해야 하는 사고가 있었다. 런던지사는 추가구입을 지시받아 구매담당팀이 브리티스 컴퍼니에 주문을 했다. 그러나 공장측은 이 기자재를 생산해내는데 8주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8주나 걸렸다가는 납기내에 배를 건조해내기가 불가능했다. 구매팀은 공장의 작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갔다. 제작 책임자를 만나 통사정하고 따로 선물공세를 펴 작업 기간을 2주 앞당길 수 있었다. 이 부품은 대기하고 있던 트레일러에 실려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행기에 실었다. 입체공수작전이었다. 그 결과 부품은 제시간에 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조선업계는 현대가 배를 만든다고 하니 몇 가지 예언을 했다. 첫째는 현대건설이 건설을 많이 했다고는 하나 조선소 건설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본사는 그것을 해냈다. 둘째는 현대가 조선소를 짓기는 했으나 배를 짓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언했으나 그것도 해냈다. 셋째로는 선체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선박의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 했으나 본사는 그것도 해냈다.

<자료: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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