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경제5단체가 있다.

상황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무협),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를 일컫는다. 국민이 보기에는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각 경제단체가 담당한 고유 영역은 차이가 있다. 전경련은 재계를, 대한상의는 대‧중‧소기업을 망라한 상공인을 대표하며,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에 특화했고, 경총은 역시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 즉 사용자 관점에서 노사문제를 다룬다. 무협은 수출기업의 눈으로 무역‧통상 문제에 집중한다.

이들 가운데 대한상의는 경제단체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상공회의소는 법정 경제단체로 전국 18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단체이자, 전 세계 130여 개국 상공회의소와 네트워크가 구축된 범세계적인 기구다. 1884년 창립해 국내 상공업의 태동과 발전을 함께 해 왔다.

전국 73개 지역에 상의가 포진해 있다. 이들이 대표 단체인 대한상의의 정회원이다. 상공업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비영리법인 및 단체의 중앙회 또는 이에 따르는 기관과 업종별 사업자단체는 특별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상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기로 하고, 대한상의 회장은 누가 되는지만 짚어보자. 대한상의 회장은 서울상공회의소 회장이 당연직으로 겸하며, 대한상의 상근임원과 사무기구는 곧 서울상공회의소의 상근임원과 사무기구를 겸한다. 서울상의 회장이 당연직으로 대한상의 회장을 겸한다는 말은 바꿔말하면 대한상의 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서울상의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상의 회장은 각 지역에서 나름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자리이며, 따라서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의 오너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대표 기업이 여러 개일 때에는 선거 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보기 싫은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쨌건, 지역별 상의의 역대 회장을 살펴보면, 일부 특성이 눈에 띈다. 서울상의는 회장을 포함해 배출한 14명의 회장 가운데 박두병, 정수창, 박용성, 박용만 등 두산그룹 출신이 4명에 달한다. 인천상의는 이회림, 이수영 등 OCI 오너들이, 광주상의는 박인천, 박동복, 박정구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출신 경영인이 회장을 차지했다.

최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최태원 SK 회장이 차기 대한상의 회장을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만 현 회장의 요청에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보도 내용을 보면 기정사실인 듯하다. 서울상의는 내년 1월 말, 또는 2월 초 회장단 회의에서 차기 회장을 추대하고 2월 말 총회에서 공식 선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태원 회장이 유력 경제단체장을 맡는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총수와 전문경영인을 구분하지 않고, 4대 그룹을 이끄는 기업인이 5대 경제단체 가운데 한 곳을 맡는 것은 2003년 전경련 회장에 선임된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이후 18년 만이다. 오너로 따지면 1998년 김우중 전경련 회장(전 대우그룹 회장)에 이어 23년, 1993년 부친 최종현 전경련 회장으로부터는 28년 만이다.

그런데,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긴 했지만, SK그룹도 상의와 더 많은 인연이 있다. 그룹이 태동한 수원상의다. 수원상의가 배출한 전‧현직 회장 10명 가운데 최종건, 최종현, 조종태, 최신원 회장 등 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최태원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추대되어 대한상의 회장이 된다면, 지역 기업으로 지역 상의를 이끌었던 회장을 배출한 기업의 기업인이 처음으로 상의를 대표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경제단체 무용론은 어제오늘 제기된 게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개발연대 시대에는 업계나 정부 모두 경제단체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건국 후 혼란 시대를 거쳐 정권을 잡은 절대 권력자와 척박했던 6‧25 전쟁 폐허를 극복하고 기업을 일으킨 창업 1세대라는 특수한 관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에도 투명성이 확산하면서 정부와 경제단체의 관계는 이어지고는 있으나 많이 희석됐다. 무엇보다도 기업과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규제와 개입이 증가하면서 경제단체의 목소리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제단체장이 되어 정부 정책에 반하는 발언이나 대안을 내놓으면 사정당국의 표적이 되어 고초를 겪는 사례도 다수다. 사실상 폐지 수순까지 내몰렸던 전경련이 대표적이다.

이러다 보니 – 극소수를 제외하면 - 창업 2세 기업가부터 경제단체장이 되길 꺼리고, 회장단의 요청도 고사하는 일이 허다하다. “되도록 조용히. 튀지 말고. 눈에도 띄지 말라”는 말이 수들 사이에서 퍼진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바로 보여준다.

경제단체들은 늘 강력한 추진력과 소신이 있는 회장을 갈구한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이끌던 전경련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수장이었던 대한상의도 마찬가지다. 대한상의도 어려운 상황에서 박용만 회장이 고군분투했지만, 역량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상의는 최태원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맞이한다. 최태원 회장은 재계 3‧4세의 맏형으로서, 새 시대를 여는 첫해에 유력 경제단체장으로 나선다. 이들 세대는 경제단체와는 무관했으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나서면서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주요 그룹 새 총수들이 모여 산업계의 목소리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적어도 이러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서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산업계는 최태원 회장의 활약을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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