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2077’, ‘링피트’, ‘GTA5’ 등 현지화 총괄 연출
“현지화 작업은 단순 번역 그 이상의 것…연출 역량 극대화되야”
“BTS 인기로 한국어 위상 상승…게임 더빙 수요 증가할 것”
“열악한 현장 상황 이해 당부…동반 성장할 경쟁자 등장 기대”

이인욱 무사이 스튜디오 대표가 국내 현지화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태구 기자
이인욱 무사이 스튜디오 대표가 국내 현지화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태구 기자

[서울와이어 한동현 기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더빙 연기가 대충 이뤄지는 작업이 절대 아닙니다. 섬세한 현지화 번역 작업과 치밀한 연출의 지시하에 ‘초월더빙’ 작품이 완성됩니다.”

이인욱 무사이 스튜디오 대표는 한국어 더빙 작업 과정을 두고 이같이 밝혔다. 이인욱 대표는 10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사이버펑크 2077’의 한국어 더빙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주도하에 무사이 스튜디오는 외국 게임의 번역부터 더빙까지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 작업을 하는 전문스튜디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화업계 전문 미디어 ‘슬레이터’(Slator)가 발표한 ‘슬레이터 2019 게임 현지화 보고서’(Slator 2019 Game Localization Report)에서 국내 유일 현지화 서비스 ‘메인 프로바이더’(main provider)로 선정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해외 게임사들이 프로필만 확인하고 작업을 진행할 만큼 많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그에게 국내 현지화 시장의 상황과 고충,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사이스튜디오가 현지화 작업을 담당한 CDPR의 '사이버펑크 2077'이 10일 출시됐다. 사진=CDPR
무사이스튜디오가 현지화 작업을 담당한 CDPR의 '사이버펑크 2077'이 10일 출시됐다. 사진=CDPR

◆ 현지화는 번역 그 이상의 작업
“단순 번역만 거친 더빙 작업은 의미가 없다”고 밝힌 이인욱 대표는 현지화 작업에서 번역과 연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게임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인만큼 그 세계에 녹아드는 용어 번역이 선행돼야 한다.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는 것은 기본이며 몇 차례 감수를 거친 후에도 캐릭터 입모양에 따라 녹음 중 대사를 수정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내 현지화 팀은 이 대표의 세밀한 연출작업에 따라 유저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여러 초월번역을 만들어냈다. 

이인욱 대표는 하나의 대사를 녹음하더라도 현재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으며 누구와 이야기하는 건지 모든 상황을 따지며 작업한다. 덕분에 유저들은 자막 없이 한국어 더빙을 들으며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는 “더빙하면 성우의 역량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연기 방향을 설정하는 연출의 역량이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연출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성우들의 연기도 중심을 잡지 못해 화면에 맞지 않는 결과물이 나온다. 시간에 쫓기는 게임 개발 작업 특성상 재수정도 어려운 만큼 유저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연출이 정신을 바짝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 열악한 현지화 현장 상황 이해 당부
이인욱 대표가 연출로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현지화 작업 현장 상황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유저들은 화면과 더빙 간의 미묘한 괴리, 한국어 연기에 대한 어색함 등을 이유로 더빙에 반감을 갖는다. 이 중 화면과 연기의 괴리 문제는 현지화 작업 당시 화면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현지화 작업에는 대본외에도 상황 파악의 실마리가 되는 영상, 장면 등의 자료들이 필수다. 하지만 게임사들은 보안을 이유로 대부분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한번은 게임 장면이 필요하다고 제작사에 강하게 요구했더니 웹캠을 통해 1시간가량 플레이 장면을 보여주기만 한 적도 있다. 장면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작업 후, 화면을 확인해보면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비판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라고 토로했다.

이인욱 대표는 빠듯한 게임 제작일정을 따라 이뤄지는 현지화 작업 과정도 지적했다. 그는 “‘사이버펑크2077’ 현지화 작업 기간은 4개월도 안된다. 반면 유저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결과가 바뀌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 제작되면서 최근 현지화 작업 분량은 과거보다 몇 배로 불어났다”면서 “한국어 더빙판 제작 결정이 늦어졌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촉박해졌지만, 직원들이 모두 합심한 덕분에 납품일을 맞출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나고 한국인이라서 해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사이버펑크 2077’ 현지화 작업 동안 아침마다 직원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와야 했다며 너스레를 떤 이인욱 대표는 “이번 경우뿐 아니라 게임업계에서 현지화 작업을 상대적으로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공들여 만든 게임일수록 세세한 디테일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지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유저가 플레이에 몰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해당 작업의 중요성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원어 더빙, 무조건 정답은 아냐”
원어 더빙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 이인욱 대표는 “취향의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원어 더빙 연기가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현지화 팀내에는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익숙한 직원들이 많다. 이들에게 원어 더빙을 들려줬을 때 연기가 이상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도 많다. 원어 더빙도 캐릭터 해석과 연출 방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꽤 된다”면서 “국내 현지화 작업은 캐릭터의 생김새·성격·상황을 모두 고려해 최적의 성우를 기용하고 국내 정서에 맞게 연출하는 만큼 더빙에 대한 조건 없는 반감은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빙에 대한 조건 없는 비판이 이어질수록 게임사들은 더빙을 기피하고 더빙작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한 이인욱 대표는 “유저들이 현지화 현장의 열악함을 알고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응원해줬으면 한다. 상황이 열악하다 해도 현지화 시장 종사자들은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사이스튜디오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00여개 게임의 현지화를 담당했다. 사진=무사이스튜디오
무사이스튜디오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00여개 게임의 현지화를 담당했다. 사진=무사이스튜디오

◆ BTS 덕분에 현지화 시장↑
이인욱 대표는 국내 현지화 시장이 한국어 위상 상승에 따라 더 커지리라 예측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한국어의 입지도 커지고 있다. 독일에서 생활 중인 아내가 한국어교원자격증을 갖고 있어 현지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 중인데 과거보다 강의 의뢰가 급증했다”라면서 “언젠가는 남한과 북한이 통일될 것이고 한국 게임 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이 둘이 시너지를 내면 국내 현지화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국내 유일 넘어 동반성장 꿈꾼다
무사이 스튜디오가 국내 현지화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인욱 대표는 미래 현지화 시장 성장을 위해 더 많은 경쟁자와 후배들이 생기길 바라고 있다. 그는 “현지화 시장이 발전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번역부터 음향작업까지 모두 해낼 수 있는 업체는 국내에서 우리 뿐”이라면서 “게임, 영상 등의 음향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자주 만나지만 이들을 가르칠만한 서적도 교육과정도 전무하다.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들을 잘 가르쳐서 언젠가 무사이 스튜디오의 경쟁자로 등장해 동반 성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인욱 무사이 스튜디오 대표는 2000년부터 국내외 게임사들과 2000여개의 게임 현지화 작업을 담당했으며, '리그오브레전드', ‘GTA5’,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헤일로’, ‘토탈워: 삼국지’,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링피트 어드벤처’, ‘베리드스타즈’ 등 국내외 유명 게임들의 더빙 연출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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