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지막 달인 12월에 들어서면서 한국 조선 빅3(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들이 거의 매일 선박 수주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통상 연말에 수주 계약이 몰리는 경향은 있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일부에서는 한해 내내 놀다가 연말에 반짝 일하는 거냐는 농담도 던진다. 해외 선주들은 성탄절에서 신년으로 이어지는 휴가 시즌에 앞서 한 해 발주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에 맞춰 조선사들도 12월 중순쯤이면 내년도 영업 계획에 업무 비중을 높이는데 2010년은 31일까지 수주 계약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치르고 있단다. 따라서 올해 확정 수주고는 내년 1월에야 최종치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으킨 변화다.
선주가 선박을 발주할 때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여러 요인을 검토하고 검토한 다음에 결정한다(본지가 연재하고 있는 ‘배이야기’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발주 후 선박을 인도받는 2~3년 후의 경제 상황을 내다보면서 한 척에 수천만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 아무리 돈 많은 선주라고 해도 절대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렇게 건조해서 실제 사업을 투자했을 때, 예상대로 경제 상황이 좋으면 엄청난 부를 얻지만, 그렇지 않으면 선주가 무너질 만큼 실패를 경험한다.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룰 빈틈없이 자세히 검토한 후 발주 결정을 내린다. 최초 계획 구상에서부터 발주까지의 검토과정도 1~2년 정도, 아니면 그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경기가 호황일 것이 확실하다면 당장에라도 계약금을 조선사에 건네지만, 불황일 때는 고민의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따라서, 내년 이후의 시점을 그나마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연말에 발주를 결정한다.
2020년 초 만해도 신조 발주 시장은 회복기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앞서 수년 동안 조금씩 늘어나고 있던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선박 발주가 올해 이후부터 만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앞섰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모든 전망을 완전히 뒤엎었다. 주요 국가들이 봉쇄 조치에 나서면서 해상을 통한 물동량이 급감했고, 신형 선박을 투입하기는커녕 지금 바다에 떠다니는 선박도 줄여야 할 판이 되었다.
불황에 몰렸다고 해서 선주가 선박 발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황 이후 시대를 대비해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그렇지 못했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6월까지만 잘 버티면 하반기에는 경제가 반등할 것이라는 희망에 버텼지만, 하반기 2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물거품이 됐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 경제의 불투명성이 너무나 짙어 선주들은 결정을 미루고 또 미뤘다. 줄어들고 있는 일감을 채워야 하는 조선사 선박영업사원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입술이 타들어 갔다. 그렇게 연기했던 발주가 11월부터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가을까지 반짝 터졌던 발주가 넘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을 완료했고, 미국과 영국 등이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시작한 시기에 발주 계약이 몰린 것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치료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신 접종을 개시했다는 사실을, 선주들은 내년부터 실물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에 베팅을 걸었고, 지금 조선사들과 발주 계약서의 서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공생관계에 있는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은 미래 지향적인 산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심리산업이기도 하다. 매번 2~3년, 나아가 10년 이후의 경제 상황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하고 분석해 수치로 산출한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해도, 시장이 느끼는 심리적인 상태가 불안정하면 안 된다. 코로나19 백신은 안개 속과 같았던 형국에 일말의 희망을 던져줬고, 백신으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선주사들은 발주를 선택했다. 덕분에 조선사들도 일감을 조금이나마 늘려나가고 있다.
사실, 기자는 이번 발주가 2년, 3년 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을 못 하겠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지, 세계 경제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확신을 못 하겠다. 어쨌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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