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
채명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2021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대통령 취임 후 네 번째 신년사였다. ‘경제’라는 단어를 29번이나 써가며 민생경제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기업’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쓴 것은 몇 번인지. 세어보니 총 6번이었다. ‘기업’만을 언급한 것은 단 두 번이었고, ‘벤처기업’, ‘우리 기업’, ‘대‧중소기업’, ‘지역 기업’을 각각 한 번이었다.

문 대통령 신년사에서 기업을 언급한 횟수는 이번이 가장 적다. 취임 후 처음으로 발표한 2018년 신년사는 ‘기업’을 9번 썼고, 2019년에는 10번, 2020년에는 무려 16번이나 사용했다.

문 대통령이 신경 쓰고 키우려고 하는 ‘중소기업’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고 ‘대‧중소기업’이라는 표현만 썼다. 경제활동의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라고 하는데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강조한 대통령치고 ‘기업’을 언급하는 데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년사의 한 대목을 보자.

“자동차, 조선과 같은 우리 주력산업들이 경쟁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세계 5강에 진입했고, 조선 수주량은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정부가 역점을 두어온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3대 신산업 모두 두 자릿수 수출증가율을 보이며 새로운 주력산업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기업의 성과를 인정했다. 기왕 인정해준 거 기업명을 함께 넣어주면 해당 기업들 나름 얼마나 힘이 됐을까. 자동차, 조선,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하면 떠오르는 기업들은 뻔한데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웠기에 단어를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해를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이유 때문만일까.

여러 방면의 기업가들에게 의견과 자문을 들어보면, 이는 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기업관의 연장 선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기업은 깨끗하지 못한 집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업에서 성공한 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과거 정부와 유착해 이권을 얻어 불공정하게 성장한 집단이라는 원죄가 있으므로 책임지고 속죄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원죄를 지은 기업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줘야 할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공정경제 3법,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 등 지향점은 틀리지 않지만, 방법론에서 기업이 큰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법 규제는 물론이거니와, 과거 정부 법 제도에 맞춰 환경 기준을 지켰으나,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긋났다는 이유로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처벌을 가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지난 정권 때마다 한 번씩 나왔다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이익 공유제를 다시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업종이 피해를 본 업종에 이익을 나누자는 것인데, 그래서 ‘코로나 이익 공유제’라는 문패를 달았단다. 기업, 특히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기업이 독식한다고 여기는 현 정권 정치인들이 이를 빼앗으려고 하는 합법을 빙자한 협박이다.

이런 사례를 하나하나 모아보면, 결국 2021년 신축년(辛丑年)에는 경제회복을 최우선이라고 제시한 문 대통령의 정부와 여당 정치권은 기업의 기를 살려 활동을 독려하기보다는, 잘하는 기업을 옥죄어 빼앗은 돈으로 국민을 살리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고용을 무조건 많이 하고,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도 등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해외에 집행할 것도 국내에 투자하고, 협력업체는 물론 어려운 지역사회까지 모두 금전적으로 돌봐야 하고, 이를 위해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하는 기업은 갑(甲)인 정부와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을(乙)’이다. 그것도 철저히.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올해도 기업은 힘든 길을 갈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적어도 기자가 이 일을 하면서 보면 정권 말기가 되면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던 기업들에 유화책을 제시하곤 했는데, 문 정권은 마지막까지 기업과 갈등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불안감만 커진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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