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제41대 대한의사협회장 당선

'서울와이어'는 북미 인터뷰 전문 언론사 ‘AVEC G’(www.avecg.net)의 편집장이자 수석기자인 인터뷰 전문기자 글렌다 박을 객원기자로 초방하여 박 기자의 기사를 ‘글렌다박의 블루오션’이란 타이틀로 게재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인터뷰 전문 기자’인 박 기자의 기사를 통해 사람에 대한 내면의 모습에 대한 깊이 있게 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하니, 많은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지난 326일 치러진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자 전라남도의사회 회장이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는 작년 8,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공공의대 설립 추진 등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선 의사들과 9월 정부 및 여당과 합의를 체결한 의사협회 회장의 독단적 행보는 논란을 야기했으며,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 새로운 수뇌부와 함께 쇄신과 도약을 꿈꾸는 의료계에 있어 이번 의협 회장 선거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한의사협회는 그동안 메르스, 코로나 사태 등 보건의료 위기사태와 문재인 케어 등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최고의 보건의료 전문가단체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회원들이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책을 현실화하고 국민의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의료지원을 통해 회원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의협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이필수 당선인은 당선 직후, 의협 회원과 국민의 신임을 쌓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필수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
이필수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

◆ 여수에서 부조리한 의료 실상을 본 가난한 소년, 의사가 되다.

이필수 회장은 1962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여수는 일명 ‘깡 시골’이었다. 속히 ‘병원 한 번 가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할 정도로 병원비는 비싸고 의사도 없던 시절이었다. 섬마을과 바닷가로 아름다운 지역이지만 실상 주민들은 고된 뱃노동과 함께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중노동과 질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어린 학생이었지만, 이러한 부조리하고 균등하지 못한 의료 현실을 본 이필수 회장은 사회적 약자에게 의술을 베풀 수 있도록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학창시절 그의 집은 가난했고, 어려웠다. 학원을 간다거나, 과외를 하는 것은 그의 삶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밤을 새워 공부했다. 여수에서 광주 서석고등학교로 유학을 간 그는 공부하다 보면 모르는 것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과거 고향에서 보았던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어려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의지를 다져나갔고, 그 결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였다.

군사정권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시작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끝난다. 이필수 회장은 1981년 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 학부과정을 마쳤다. 격동의 시기에 대학을 다닌 이필수 회장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시절을 이렇게 추억한다.

“지금처럼 현대화된 교육 시설과 실습 환경이 주어진 시절이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좁은 강의실에서 함께 배웠던 동료들은 모두 책임감이 투철하고 환자를 고치겠다는 집념이 뛰어난 예비 의사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앞뒤를 다투며 선의의 경쟁 속에 의술을 익혀 나갔습니다. 사실 끝없는 시험이 이어지는 의과대학 생활은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고되지만, 우리는 바른 의사가 되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료들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함께 공부해 나갈 때 어려움은 잊히고 좋은 추억만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의료계 곳곳에서 환자와 대한민국 의료계를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피과흉부외과를 전공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필수 회장은 삼성창원병원(구 마산고려병원)에서 수련의과정을 끝낸 뒤, 사람의 심장을 다룬다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려내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흉부외과에 지원했다. 동 병원에서 4년간의 흉부외과 전공의과정을 마친 그는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흉부외과 전공의 시절은 어떤 글이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되고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큰 재해나 교통사고 등으로 위험에 빠진 환자를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수술 이후 살려내 집으로 돌려보낼 때는 너무나 보람되고 기쁘기도 했지만, 그러한 보람을 위해서는 저도 그렇지만 모든 의료진의 고된 수고와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이필수 회장은 그를 흉부외과 의사의 길로 이끌어 주셨던 경북의대 흉부외과 이종태 교수님, 성균관대 의대 창원삼성병원 흉부외과 유병하 교수님을 존경한다. 이 두 교수님께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는 흉부외과 의사가 지녀야 할 열정과 헌신을 그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 자세는 이필수 회장이 환자 앞에서뿐만 아니라 회원을 위해 봉사하는 와중에서도 항상 본보기가 되었다.

지금도 대학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련병원에서는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 교수님들이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응급환자를 봐야 하는 등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실이 지속된다면 10여 년 후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하여 심장 수술이나 폐 수술을 받기 위해 환자가 몇 개월을 대기해야 한다거나 외국으로 나가서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에 이를 것이다. 또한, 의료취약지역의 민간병원들도 흉부외과 의사를 두어야 하지만, 적정환자 수 부족과 경영상 채산성이 맞지 않아 흉부외과 의사를 도저히 채용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의료 시스템의 현실이다. 이필수 회장은 정부에 바란다. 이는 의사뿐 아니라 국민을 위해 호소하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의료취약지에 있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의대 정원증원, 공공의대신설을 논하기에 앞서 기피과인 필수 과들에 대한 수가 정상화, 기피과인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 비뇨의학과 전공자에 대한 일자리 확보 노력, 의료취약지역의 민간병원 필수과에 대한 지원 강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나주에서 유일하게 심장 수술이 가능했던 단 한 명 의사

경남 창원에서 수련의, 전공의과정을 마친 그는 1992, 전라남도 나주의 나주종합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부임하여 3년간 재직한 뒤, 본인의 이름을 건 나주 이필수흉부외과를 개원했다. 절대 작지 않은 인구수의 나주였지만, 그는 시에서 유일하게 심장 수술이 가능한 단 한 명의 의사로서 수많은 일화를 겪었다. 이필수 회장은 과거 겪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SNS에 칼럼으로 언급했다. 이하 이필수 회장이 SNS에 올린 원문이다.

오랜만에 집사람이 차려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점심상을 마주하니, 가끔씩 밥도 못 먹고 응급환자를 보던, 나주병원에서 공보의 신분으로 흉부외과 과장으로 일할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이건 그 시절 이야기 중에 하나다.

응급실에서 나를 찾는 방송이 들렸다. 오랜만에 먹게 된 점심을 뒤로 한 채 응급실로 달려갔다.

경운기 핸들에 앞가슴을 다친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BP(혈압)50mmHg 이하고 pulse(맥박)도 매우 약한 상태였으며 의식도 거의 없었다. 응급처치를 시작하기도 전에 바로 심정지가 왔고 흉곽은 불규칙하게 꺼져 있었다. 다발성 늑골 골절 및 흉골 골절이 의심되었고, 심장 파열로 인한 심낭 압전(cardiac tamponade)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태였다.

CT는 찍을 여유도 없었다. 우선 응급으로 가슴을 열어야 했다.

움직이는 침대 위에서 CPR을 하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마취과 선생님이 많은 양의 피를 준비해주었고, 곧바로 개흉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흉곽을 열자마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고글에 튄 피가 시야를 가려서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수술복을 적셔오는 피가 속옷까지 스며드는게 느껴졌다. 어시스트로 들어온 선생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무서우냐? 네가 물러서면 환자를 놓친다. 빨리 석션해!”

그렇게 소리치고는 손상된 흉곽과 심방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시야는 온통 붉기만 했다. 시간은 얼마나 흐르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고, 알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사투를 벌인 후 환자를 집중치료실로 이송시켰다. 그리고 수술방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가 엉덩이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이 잠 속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이제 희망이 없는거죠?”

보호자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보았다. 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 다리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때 코드 블루(심정지)를 알리는 원내 방송이 울렸다. 순간 너무 놀라서 수술장에서 집중치료실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환자는 안정적인 상태였다. 수술장에서 잠든 중에 꾼 꿈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흉부외과 의사라는 것에 안도했다. 한 환자의 생명이 내 손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주에 심장을 볼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이필수 회장의 나주병원 흉부외과 과장 재직 시절(1994년): 흉부외과는 당시에도 기피과였으며 넓고 넓은 나주에, 심장 수술이 가능한 외과 의사는 이필수 회장 혼자 밖에 없었다.
이필수 회장의 나주병원 흉부외과 과장 재직 시절(1994년): 흉부외과는 당시에도 기피과였으며 넓고 넓은 나주에, 심장 수술이 가능한 외과 의사는 이필수 회장 혼자 밖에 없었다.

그는 이 외에도 개원의 시절, 퇴근 직전, 나이든 어르신이 병원문을 들어서자마자 쇼크로 쓰러져서 황급히 뛰어나가 심폐소생술 후 원상으로 회복시켜 종합병원까지 함께 후송해 소생시킨 사례가 있었다. 봉침을 등에 맞고 가려움증과 발적이 심해 오신 어르신이었다. 다음날, 환자의 딸이 그에게 직접 전화하여 아버지를 살려주셔서 고맙다라고 눈물 흘리며 고마움을 전했다. 임상 의사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이 기억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또 하나의 추억이다.

의사회 활동 22, 민초회원들과 소통하며 공약 지키기 위해 노력해

이필수 회장은 1999년 나주시의사회 총무로서 처음 의료 행정가의 길에 입문했다. 그는 나주시의사회의 총무로서 전반적인 시의사회 업무 총괄과 회원 지원을 위한 실무들을 익혀 나갔다. 당시 있었던 의약분업 파업에 회원들과 동참했던 일은 그의 동료들은 물론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의약분업은 의료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잘못된 정책이었고, 우리 회원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시의사회 총무 자격으로 회원들과 함께 투쟁했고, 그 여파를 같이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천에 모여 시위를 했고,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맞서 함께 싸웠습니다.”

힘든 투쟁이었다. 그와 회원들은 동료애로 뭉쳤고 불합리한 조치에 항거했다. 정부는 초진료 98백 원을 12천 원으로 올려주는 것으로 합의하는 조건으로 의약분업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의사가 저수가에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수가로 인해 의료계는 점점 무너져 가고, 필수 의료도 함께 죽어가는 형편이다. 이필수 회장이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상황을 더는 가만히 앉아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필수 회장의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 단장 재직 당시(2019년): 0.1%만 더 얻어내도 회원들의 삶과 의료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었기에, 그는 밤을 새고 고민하고 수많은 자료를 분석했다.
이필수 회장의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 단장 재직 당시(2019년): 0.1%만 더 얻어내도 회원들의 삶과 의료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었기에, 그는 밤을 새고 고민하고 수많은 자료를 분석했다.

이윽고 그는 나주시의사회 회장을 비롯해 전라남도의사회 기획의사, 전라남도의사회 부회장을 거쳐 2015년 제38, 2018년 제39대 전라남도의사회 회장으로 5년간 재임하는 동안 제39대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의협 산하 심사체계 개선 특별위원회 위원장,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장, 대한의사협회 제21대 국회 총선기획단장 등 다양한 요직을 역임했다.

이필수 회장은 2015년 당시 전라남도의사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20년간 운영했던 개원가의 흉부외과 의원을 그만두었다. 그는 의업을 유지하면서 회무에 전념하는 것은 제한적이라고 생각했기에, 회원들을 위한 헌신과 봉사에 주력하고 요양병원에서는 주로 당직과 야간 근무를 중심으로 근무했다. 그가 재직했던 화순에 있는 백재활요양병원에서는 흉부외과 전문의로서의 그의 경험을 살려, 말기 암 환자를 포함한 중증 환자의 바이탈(생체징후)관리를 중점적으로 진료하였다.

저는 요양병원 봉직의로 근무하면서, 제가 개원의로서 느끼지 못했단 봉직 의사의 어려운 점과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의 요양병원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차 의료 현장에서 오랫동안 개원과 봉직을 다 해본 진짜 민초의사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저는 개원의와 봉직의를 포함한 민초 회원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며 나이가 적든, 많든. 교수든, 봉직의든, 개원의든 혹은 전공의든. 우리 회원들은 의사라는 가치 하나로 뭉쳐 있는 동료라는 것을 느꼈다. 봉직의로서 백재활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어려운 대한민국 의료 현실 속에서 많은 고통과 부조리에 직면해 있는 회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뛰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다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코로나 19 도봉구 생활치료센터 근무(2021년 1월): 생활치료센터에 인력도 부족하고, 센터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고충이 크다는 이야기를 접한 후 봉직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생활 치료 센터로 뛰어갔다.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회원들의 고충을 같이 나눌 수 있었기에 보람된 시간이었다.
코로나 19 도봉구 생활치료센터 근무(2021년 1월): 생활치료센터에 인력도 부족하고, 센터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고충이 크다는 이야기를 접한 후 봉직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생활 치료 센터로 뛰어갔다.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회원들의 고충을 같이 나눌 수 있었기에 보람된 시간이었다.

이필수 회장이 2015년 전라남도의사회 회장 선거 당시 공약이었던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두고 언제든지 회원들의 고충 해결을 하겠다라는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는 주말과 명절에도 24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켜두고 회원과 환자의 고충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에게 전화가 오는 민원은 공간, 심평원, 보건소 민원, 의료분쟁, 진료실 폭력 등 내용도 다양하다. 개인의 사생활의 범주를 지키기에는 쉽지 않은 공약이었지만, 그는 주간 시간 동안 어려운 현실 속에서 많은 환자를 만나고 있는 회원들이 일반적인 회사나 공무원과 같이 낮에만 민원에 대응한다면 부조리한 일이 있어도 시간이 없기에 어딘가에 연락할 방도가 없어 신속하게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제한될 것이라는 생각에 거침없었다. 이번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공약에도 ‘24시간 상시 대응하는 회원 고충 처리 전담 이사직 및 부서 신설을 약속했다.

주로 우리 회원들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보험 청구에 대한 문제라든지, 심평원과 관련된 문제, 병원 운영과 관련된 세세한 민원들로 제게 연락을 주었습니다. 때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부터 뛰어나가, 해당 회원과 함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고맙다며 연신 고개 숙이는 우리 동료의 얼굴을 볼 때, 저는 의사를 고치는 의사의 필요성을 마음속 깊이 절감하고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는 의사회 임원으로서 일하면 할수록 의사회 회원들은 심각한 저수가의 현실 속에 심평원의 불합리한 삭감을 포함한 과도한 규제와 압박 속에 의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원들의 고통을 나누고 해결해 나갈수록, 단순히 전남지역에서 뿐만이 아닌 모든 회원과 전 의료계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의료계 1인 시위의 아이콘.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이유는.

시위에 대해서는 유난히 보수적인 의료계였다. 보건의료 및 정책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1인 시위를 하는 의사들이 늘어났고 이필수 회장은 앞서 언급한 그의 소신과 회원들의 보호를 위해 잘못된 의료 정책이 강행될 때마다 그는 어디든 달려가 1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작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장폐색이 있었던 환자에게 대장내시경을 위해 장 정결제를 먹인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인 의료진들은 환자가 복통이 없고 배변 활동을 서너 번 하여 부드러운 것을 확인하고, 장폐색이 아니거나 부분 장폐색이었다라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었다. 그 결과, 주치의인 전공의는 금고 10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이 선고, 담당 교수는 법정 구속이 되었다.

당시 사건에서 재판부는 우선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해 의료과실이나, 사망, 또는 이에 준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형사 처벌은 행동에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장 정결제 투여 관련 사망 사건은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있는 진단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대장암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환자에서 진단을 위한 대장내시경을 수행하기 위한 전 처치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요, 선한 의도로 의료행위를 한 것이고 고의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이루어진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있고 이러한 불구속 수사원칙이 도입되면서 구속 사유가 엄격해졌다. 그렇기에 불구속 수사원칙 도입 이후에는 많은 형사 사건에서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하더라도 주거 일정,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해당 교수가 대학병원이라는 일정한 직장과 명확한 주거지를 가지고 있고, 두 아이의 모친으로서 도주할 가능성이 적은 안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례적으로 구속이 결정되었다. 이는 누가 봐도 온당치 못한 처사였고, 과도한 조치라고 여긴 이필수 회장은 9월 재판이 끝난 후, 서울중방지방법원 앞에서 사법만행 중지를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고, 10, 다시 한번 서울 구치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또다시 강조하건대, 응급 상황에서 진단을 위해 전처치를 시행한 해당 교수님의 의료행위가 형사 구속할 만큼 악의적이고, 고의로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인 것인지 저는 재판부에 되묻고 싶었고, 이와 같은 부당한 조치에 항거하기 위해 구치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장 정결제 관련 내과 교수 구속 사건 시 구치소 앞 1인 시위(2020년 10월):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법적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구치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구치소 안에 갇힌 교수님의 고초를 생각하면 이필수 회장에겐 사소한 것일 뿐이었다.
장 정결제 관련 내과 교수 구속 사건 시 구치소 앞 1인 시위(2020년 10월):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법적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구치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구치소 안에 갇힌 교수님의 고초를 생각하면 이필수 회장에겐 사소한 것일 뿐이었다.

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으로서 시작하는 길 위에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회원들을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의료 현안과 정책에 두루 밝아야 한다. 세부적인 사항들은 집행부와 실무진 선에서 시작되겠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대정부 협상 및 투쟁에 있어서는 회장 의견과 결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 가장 시급한 것은 회원 보호에 관한 공약의 이행이다. 이필수 회장은 첫 번째 공약이기도 한 <회원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회>를 이행하는 것으로 회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무엇보다 시급한 사안은 법사위에 계류된 의사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대 교통사고만으로도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법안은 면허 취소도 문제지만, 면허 취소 사유가 아닌 사소한 문제만 발생해도 각종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의사 회원들을 협박하고 합의를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 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 강도·살인·성폭력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까지도 보호하겠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다만, 이 법안으로 인해 실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법안은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후보자 시절에도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이후 법사위 통과를 막기 위해 공식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총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이제 당선인의 자격으로 국회를 직접 찾아가서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잘 설명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여 선량한 다수 회원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원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필수 회장의 대한의사협회 회장 취임은 51일이며 임기는 3년으로 2024430일까지이다. 의사협회 회장은 협회에 속한 상근직인 관계로, 개인적인 의업을 겸업으로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 의미는 다음 3년간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무 규정상 직무에 따른 연봉을 주지만, 일반적으로 의사로서 일했을 때 받게 되는 보수에 비교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보수나 대우를 떠나, 회원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명예롭고 책임 있는 중요한 직책이라 여깁니다. 또한,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임상 활동이 제한되므로, 환자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들지만, 저는 의사를 고치는 의사도 의미 있고 중요한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이필수 회장은 연고지가 광주인 관계로, 회무를 위해 서울에 체류하기 위해 협회에서 제공되는 작은 숙소를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숙소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큰 규모도 아니고 회무로 인해 바쁠 것이기에 가족과는 주말 외에는 항상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이라 예상한다.

아내와 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가족들 또한 제가 회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13만 회원들의 삶을 개선할 만한 자랑스러운 업적을 남기고 돌아오길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대한의사협회 회장으로 선출해주신 우리 13만 회원들의 소망과 가족들의 바람을 가슴에 품고 열정과 헌신의 자세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대한의협회장 선거에 앞서 지난해 12월 의협신문에서 신년특집으로 선거 관련 대회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결과 응답자 중 53.6%(1)가 의협회장으로 협상가유형을 꼽았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되어온 의협의 투쟁 방식에 대한 회원들의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향후 의협의 회무가 변화되어야 한다라는 뜻이 담긴 조사결과였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의료 4대 악법 저지 투쟁 이후 회원들의 투쟁에 대한 피로도가 심하여 제41대 의협회장은 지난해 투쟁의 성과를 따낼 합리적 협상가를 차기 의협회장 자격으로 꼽는 것이라 예상된다. 이러한 회원들의 설문조사 결과에 가장 적합한 후보가 누구였는지는 선거 결과로 알 수 있었다.

최근 이필수 회장은 11명으로 구성된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1명의 인수위 구성을 들여다보면, 이필수 당선인이 강조한 탕평인사에 걸맞게 병원·개원의·교수·봉직의 등 다양한 직역으로 고르게 구성되어있다. 회장 당선인이 구성한 인수위원회 인원 중 다수가 인수인계 기간 중 차기 집행부의 상임 이사진 등 구성원으로 임명되는 관행이 있지만, 이필수 회장은 논공행상은 없다라고 명백히 견해를 밝힌 상황이다.

그는 회무를 함께 해 나갈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의료법 개정 등 산적한 문제와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당··청 인사들과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필수 회장은 의료 행정가의 길에 뜻을 둔 후배, 제자, 그 외 의사회에서 종사하는 회원들에게 그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의사협회 회무는 의료 행정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의 목적이 회원을 위한 봉사와 헌신에 있다는 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투나 위치를 바라고 회무에 참여하기를 원하거나 어떤 직책을 원하는 것은 저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바꾸어 나가고, 회원들을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입안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보탬이 될 만 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지역의사회와 산하 단체를 포함한 의사협회 임원으로서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필요한 역할을 해 나갈 때, 의사들이 온전히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일을 수행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동료들이 치료해 나갈 환자들에게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필수 회장의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을 축하하며 의료계의 발전과 함께 새로 도약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인터뷰/글: 글렌다박 기자
사진제공: 이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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