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티그룹, 한국 포함 13개국서 소비자 금융 철수 공식화
노조 반발과 고객 문의 쇄도, '뱅크런' 지적엔 "사실무근"
통매각 또는 분리매각 가능성, 기업 금융권 인수여부 주목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씨티그룹이 지난 15일 실적발표에서 한국내 개인 대상 소매금융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와이어 주해승 기자] 미국 씨티그룹이 한국내 개인 대상 소매금융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2004년 씨티그룹이 옛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공식 출범한지 17년 만에 대출, 예금, 신용카드 등 소매금융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같은 씨티그룹의 발표에 뿔난 노조의 반발이 이어지고, 기존 고객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또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의 통매각 또는 분리매각 가능성과 빅테크 기업, 지방은행 등의 인수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노조 반발과 고객 문의 쇄도… '뱅크런' 지적엔 "사실무근"

한국씨티은행의 본사인 씨티그룹은 지난 15일 실적발표에서 지속적인 사업전략 재편의 일환으로, 소비자금융 사업부문에 대한 향후 전략 방향을 발표했다.

씨티그룹은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소비자 금융사업을 4개의 글로벌 자산관리센터 중심으로 재편하고, 한국을 포함한 해당 지역 내 13개 국가의 소비자 금융 사업에서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는 지난 16일 씨티그룹의 소매금융 철수 결정에 반발하며 규탄시위를 벌였다.

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뉴욕 본사의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발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은 2020년도 임금협·단체협상(임단협)을 진행 중인데, 노조는 19일 최종 교섭 결렬 시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이 경우 한달 후 총파업을 비롯한 합법적인 쟁의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달 말부터는 국회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을 상대로 저지투쟁에도 나설 계획이다.

노조는 또한 씨티그룹이 최근 10년간 3조원 가까운 배당금 등을 한국에서 챙겨가면서 신입공채 직원을 뽑지 않는 등 비상식적 행태를 보이다 결국 대량 실업사태를 촉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한국씨티은행 3500여명 직원 중 소비자금융 소속 직원이 2500여명"이라면서 "소비자금융에 대한 매각 또는 철수로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소매금융 철수 결정이 대규모 '뱅크런'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점포 폐쇄 등으로 인한 고객 불편도 예상된다.

노조는 "예치한 자산을 걱정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지점마다 수백억원의 뱅크런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수십 년간 거래한 로열티 높은 고객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일선 창구에서는 기존 고객들의 예금, 대출 등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예수금 규모는 27조3000억원으로 이중 소매금융은 약 17조원 정도다.

한국씨티은행은 '뱅크런' 지적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서비스 변동이나 이용자들의 금전적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지점 영업, 콜센터 등을 포함한 대고객 업무는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될 예정"이라며 "은행 이용에 불편함이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세부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통매각 또는 분리매각 가능성… 기업과 금융권 인수여부 주목 

소비자금융 부문의 구체적인 철수 방안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이 부문이 어디로 인수될 것인지를 두고도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69조5000억원이다. 여신 총액 24조원 중 소비자금융 부문은 17조원으로 시중은행 내 점유율은 2.7%다. 특히 신탁자산은 24조원을 넘어 점유율이 7.62%에 달하는데, 소매금융 점포는 36개에 불과하며 관련 임직원 수도 939명뿐이다.

이처럼 소비자금융 부문은 여수신 규모에 비해 신탁자산이 상당하고 지점은 거의 없어 경영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기존 은행권은 물론 인터넷은행, 빅테크 기업들도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다, 수도권 소비자금융으로 진출하려는 일부 지방은행도 매입 여부를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한 출구전략으로는 몸값을 가장 후하게 받을 수 있는 통매각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2004년 한미은행 지분 100%가 씨티그룹에 1조1505억원에 팔렸을 당시, 한미은행 자산(신탁포함)은 37조원, 세전이익은 711억원이었다. 현재 소비자금융 부문의 자산은 이보다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수익성은 훨씬 더 나아졌다.

금융업계는 자산 내 소매금융 비중만큼 순자산이 인정되고, 은행주 평균 주당순자산비율(PBR) 0.3~0.4배를 감안하면 매각 가격이 1조~ 1조5000억원 가량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에 경영권 프리이엄 등을 감안할 때 매각가가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물론 통매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산관리(WM), 신용카드 등 소비자금융 사업의 각 부문을 분리해서 별도로 매각하는 방식도 고려된다. 한국씨티은행은 여·수신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동안 고액자산가 등 WM 분야에 집중해 온 만큼 인수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한국과 함께 개인 소비자 대상 소매금융 사업 철수가 결정된 호주에서는 이런 방식의 매각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이 아닌 사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폐지 수순을 밟는 방식도 있다. HSBC은행의 경우 2013년 국내에서 개인금융 업무를 폐지하는 절차를 밟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인수에 전면적으로 나선 곳은 나오지 않고 있다. 수도권 진출을 원하는 지방금융사나 1금융권 진출을 원하는 2금융사들이 주요 후보군으로 꼽히지만 38개에 달하는 한국씨티은행의 지점을 떠안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씨티은행 직원들의 임금 수준이 타 은행보다 높고 노동조합도 비교적 강성이라는 점도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거의 폐지된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고, 직원 평균 연봉도 1억1200만원으로 타은행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또 지난 10년 동안 신입공채를 하지 않으면서 임직원 상당수가 고령화돼 명예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씨티은행이 고임금 인력과 조직의 구조조정에 성공한다면 사세확장을 꾀하는 금융사에겐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편 한국씨티은행은 오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본사인 씨티그룹이 발표한 국내 소비자금융 출구전략 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앞서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씨티그룹 발표 직후인 지난 16일 "경영진과 이사회가 함께 추후 가능한 모든 실행 방안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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