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정과 상생의 길을 묻다 (1)
올해 들어 국내 기업 전반에 빠르게 전파
투자자 시각에 초점, 사회문제 해결 한계
ESG, CSR‧CSV 대체가 아닌 상호보완 체계
기업이 행동으로 ESG의 한계 넘어서야

서울와이어는 5월 21일 창간 6주년을 맞아 ‘ESG, 공정과 상생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특집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총 14회에 걸쳐 진행하는 이번 기획은 경영의 화두로 떠 오른 ‘ESG’와 관련해 직접적인 대상인 기업과 함께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이해관계자들,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가 ESG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구해보고자 합니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가운데)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총 제1회 ESG경영위원회에 참석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가운데)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총 제1회 ESG경영위원회에 참석했다.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이 재킷 사지 마세요” 광고한 파타고니아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가 밝힌 회사의 사명이다. 파타고니아는 기업 본연의 목적을 ‘이윤 추구’가 아닌 ‘환경’에 방점을 두고 있다.

등반 장비를 만들던 작은 회사에서 출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클라이밍, 서핑, 트레일러닝, 산악자전거, 스키-스노보드, 플라이낚시 관련 제품을 판매한다. 특징은 이들 스포츠 모두 엔진이 존재하지 않는 조용한 스포츠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 스포츠의 보상은 메달이나 순위, 관중의 환호, 즉 인위적 규칙을 정하고 그에 맞는 경기장(환경 파괴를 수반하는 장소)에서 선수들이 경쟁해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자연 속에서 교감하면서 힘겹게 얻어낸 ‘개인적인 영광의 순간’이다.

1973년 처음 등장한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에 방점을 두고 관련 활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초기에는 자사의 사업이 환경에 어떤 폐해를 입혔는지 측정하는 방법을 몰라서 환경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점점 자신이 사회를 만드는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1991년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사명을 제정하면서 파타고니아의 변화가 시작됐다. 목화 농장에서 상당한 양의 살충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100% 유기농 목화만 사용했고, 독성이 있거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원단은 사용하지 않는다. 깃털은 죽은 거위와 오리에서만 채취하고, 옷의 단추도 식물성 상아로 불리는 타구아넛이라는 나무 열매를 사용한다. 이어 쓰레기 줄이기, 유독성 물질 배출 줄이기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2010년도에 들어서자 파타고니아는 마이너스 요소를 줄여나가기보다는 플러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환경보호에 훨씬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자신의 주장을 더욱 명확히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때 추진한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 파타고니아코리아가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촉구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Single use Think twice(한번 쓸 건가요? 두 번 생각하세요).” 캠페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로 떠 오른 ESG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지난 2006년에 UN(국제연합)이 제정한 ‘책임투자 원칙(PRI)’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로만 치부되었던 ESG가 2020년대 들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경영의 근간 전략으로 떠오른 이유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다소 개선됐지만, 앞서 약 8개월 기간 동안 기업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눈뜬장님’ 상태였다. 그동안 지속가능성을 꾸준히 추진해왔고, 다양한 첨단 기법을 도입해 미래를 예측하는 데 몰두했지만, 코로나19는 이러한 노력이 대부분 헛된 것이었다는 절망을 안겨줬다.

이런 가운데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ESG다. ESG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또 다른 수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통찰력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자 하는 기업들에 ESG는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에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니, ESG 확산 속도로 봤을 땐 사실상 맹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SG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던져야 할 시기가 됐다. 과연 “ESG는 기업과 사회 환경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진석 SK텔레콤 ESG혁신그룹 산하 팀장이자 이노소셜랩 연구위원은 올 초 발간한 저서 ‘행동주의 기업’에서 “ESG 관리만으로는 전 지구적 환경 위기, 극단적인 빈부 격차, 승자독식 등의 환경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서 팀장에 따르면 ESG는 ‘기본’인데 그동안 우리 사회가 해오지 않았던 부분이다. 또 ESG는 투자자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투자자 관점에서는 해당 기업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기를 원한다. 모든 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길 원치 않는다. 따라서 ESG에는 중대성 평가가 들어간다. 하지만 중대성 평가를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기업, 제약회사나 은행 등의 환경에 대한 노력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은 투자자에 비해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공급망 이슈에서 원재료 단계까지 책임지길 원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네슬레나 유니레버가 인도네시아 오랑우탄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미 항의하고 있다.

ESG를 넘어서는 사회적 기준을 평가하려면 ESG를 보완해 주는 또 다른 기준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들 기준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업은 이미 사회공헌,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등의 활동을 전개해왔다.

CSR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인상이 강하다. 기금모금이나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게 CSR의 내용이다. CSV는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을 통해 이익을 늘리고, 사회의 문제를 기업의 경제적인 가치 창출과 일체화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투자에 필요한 비재무적 요소의 분별과 관리,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ESG와 개념적 접근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들어 기업 활동의 흐름은 CSR, CSV를 제쳐두고 ESG만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용어에 대한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기존 CSR 활동을 그대로 ESG 활동으로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연말연시 대표적인 CSR 활동이었던 ‘연탄 배달 봉사’를 ESG 활동 사례로 홍보하는 식이다.

서 팀장은 “지속가능경영, CSR, CSV, ESG 모두 탄생 배경과 강조점은 다르다. 하지만 지향점은 일치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은 환경에서 왔지만, CSR이 이해관계자에 환경을 고려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줬고, CSV는 비즈니스 부서를 움직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ESG 역시 지배구조, 데이터 관리, 투명한 정보공개에 상당한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ESG가 등장하면서 CSR을 비판하거나 CSV가 등장하면서 CSR을 비판할 때 대개 보면 CSR이라는 개념을 어떤 정형화되고 고정된, 과거에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CSR 자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라며 “개념 각각의 한계를 극복해 가면서 논의의 지평을 확대해가는 형태로 나가야지, 헤게모니 싸움만 한다면 우리 사회를 역행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 문제 직접 해결하는 ‘혁신자’ 돼야

파타고니아의 사례로 되돌아가 보자.

국내에서 CSR은 사회공헌 측면으로 협소하게 고려됐다. ‘사회참여’라고 하면 자원봉사, 그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이런 참여는 타의 규범을 앞서 나가는 참여가 아닌, 어떤 사회의 문제에 동참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국내 기업은 경험도 부족했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도 소극적이라는 점도 배경 가운데 하나다. 오랜 기간 사회적 참여를 대중들의 인식을 얻기 위한, PR 중심적 사고로 바라봐 온 탓도 크다. 이러다 보니 국내 기업은 TV 캠페인과 연계된 몇몇 대표 사례를 홍보하고 그 내용이 일반인의 인식에 남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기만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는 신기루에 가까우며, 그렇기에 그 길로 들어서서는 곧 막다른 길에 닿을 가능성이 크다.

서 팀장은 “관점을 전환할 기회는 있었다. CSV 열풍이 불었을 때다. 비즈니스를 건드린 CSV는 이전과는 달랐지만, 사례 중심으로 풀렸다는 한계를 가져왔다.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깊게 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비즈니스를 통해 어떤 일반적인 사회 규범을 넘어서는 목적을 제기하면서 미래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해 보는 이른바 축적의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구 기업, 특히 유럽 기업은 사회의 규범을 앞서는 ‘혁신가’들이 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 규범이나, 그와 관련된 법과 규율로 해결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이를 통해 해결되진 않는다. 유럽 기업은 사회에 앞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비즈니스를 플랫폼 삼아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유기농 면을 써야 한다는 법적,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1994년 유기농 면을 처음으로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파타고니아가 그 예다.

서 팀장은 파타고니아와 같이 ESG를 뛰어넘은 기업을 ‘행동주의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행동주의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ESG 우수기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파타고니아는 트럼프 정부와 마찰이 있었고, 영국의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도 여론의 민감한 이슈인 성 소수자 문제를 자신들의 가치로 받아들인다. 가족회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과감하게 치고 나갈 수 있었지만, 투자자 관점에서는 매우 큰 리스크라는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두 주체의 대응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ESG 기준만 준수하는 기업은 탄소 감축에 초점을 맞추지만, 행동주의 기업은 복원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그런데도 행동주의 기업들은 말 그대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SG라는 기준에 종속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ESG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서 팀장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ESG 실천 방향을 제대로 잡고 행동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에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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