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화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
서울대 입학 3개월 만에 갈라미안 교수가 초청해
줄리어드대 정착 도와준 김남윤 교수는 평생은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 대가의 곡 원없이 들어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어린 시절부터 가족끼리 교류가 깊었던 김남윤 교수(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는 홍종화 숙명여대 교수를 미국 유학길로 이끈 장본인이다.

홍 교수가 서울예고 3학년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뉴욕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던 김 교수가 연주를 위해 귀국했다. 홍 교수의 연주를 접한 김 교수는 아이작 펄만, 핀커스 쥬커만,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 등을 키워낸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교수였던 이반 갈라미안(Ivan Galamian) 교수에게 전할 녹음테이프를 준비하길 권했다. 홍 교수는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연습해 녹음한 테이프를 김 교수에게 건넸고 그는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귀국 독주회에서 김남윤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원장과 함께. 사진=홍종화 교수 제공
귀국 독주회에서 김남윤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원장과 함께. 사진=홍종화 교수 제공

고등학교 3학년 학기 말을 앞두고. 매일 매일 땀 흘려 대학입시를 준비해도 모자랄 시간이었지만 홍 교수의 마음은 하늘로 떠올라 있었다. 홍 교수의 어머니는 그런 그를 따끔히 질책했다. 마음을 다잡아준 어머니 덕에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즐겁게 대학생활을 하던 중 5월에 편지 한 통이 날라왔다. 그리고 이 편지는 그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홍 교수는 대학 입학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갈라미안 교수의 편지와 미국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받았다. 갈라미안 교수가 친필로 보낸 편지엔 ‘나와 함께 줄리어드 음악대학에서 공부하자. 여름에 메도마운트 서머 페스티벌에서 공부하고 9월에 줄리어드 음악대학 정식 입학시험을 보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평생 꿈꾸던 갈라미안 교수님과 줄리어드 음대라니! 어머니께서는 서울대까지 입학했는데 열아홉살의 여자아이가 혼자 그 먼 곳에 가서 무슨 고생이냐며 말리셨습니다. 하지만 진취적인 사고를 갖고 계시며 넷째딸을 늘 믿어주시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 덕에 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다음 달 바로 뉴욕으로 떠난 홍 교수는 김 교수의 도움으로 거처를 찾고 갈라미안 교수와 수학을 위해 여름 동안 뉴욕 웨스트포트에 있는 메도마운트로 가서 8주 동안의 캠프에 참가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예정했던 대로 줄리어드 음악대학의 오디션을 거쳐 학사과정에 입학했다. 갈라미안 교수의 애제자였던 김 교수는 홍 교수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은인이다.

메도우마운트 서머 페스티벌에서 갈라미안 교수와 한국 학생들. 갈라미안 교수 오른쪽이 홍종화 교수다. 제공=홍종화.
메도우마운트 서머 페스티벌에서 갈라미안 교수와 한국 학생들. 갈라미안 교수 오른쪽이 홍종화 교수다. 제공=홍종화.

◆신기함과 충격이었던 맨해튼 그리고 줄리어드

홍 교수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줄리어드 음악대학 진학한 것은 1976년이다. 1970년대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났다. 신기함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배운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당시 한국에서 연주가 금지됐던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피치 등 옛 소련 작곡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연주하고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건 그에게 신세계가 열린 듯했다.

“맨해튼에 살며 가장 좋았던 건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 대가들의 음악을 원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내 콘서트 오피스를 방문하면 가끔 무료 공연 티켓을 얻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기돈 크레머, 안네 소피 무터의 뉴욕 데뷔 공연을 무상으로 참관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지금도 두 분의 연주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히 ‘세계 최고의 음대’라 불리는 줄리어드 음악대학에 재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수업은 오케스트라 수업이었다. 오케스트라 수업은 각 전공 악기의 학생들이 교향악단과 같은 구성을 만들어 받는 단체수업이다. 홍 교수는 중·고교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의 중진 연주자로 많은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아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줄리어드의 오케스트라 첫 리허설에 참가했을 때는 마치 전문 교향악단이 실제 공연처럼 연주하는 바람에 초견 실력이 떨어져 한참 고생했다.

항상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4개로 나뉜 교내 오케스트라는 매달 순서를 바꿔가며 링컨센터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무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게오르그 솔티,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이 초청돼 오케스트라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전공 실기뿐 아니라 다양한 실내악 수업을 받을 수 있었고 실내악계에서 손꼽히는 사중주단인 ‘줄리어드 콰르텟(Juilliard Quartet)’과의 배움은 홍 교수가 기존에 지녔던 실내악 기본과 틀을 다시 형성하는 큰 바탕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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