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화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
체계적 주법과 이론을 이해시켜 준 갈라미안 교수
화성법 이해하면서 연주하길 원했던 바흐 '샤콘느'
폭설로 뉴욕시 마비됐을 때 공연… 큰 기억에 남아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이 시대에 길이 손꼽히는 바이올린 지도자, 갈라미안 교수. 그는 평생 자녀 없이 1981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리어드 음악대학과 커티스 음악대학에서 정규직을 유지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생전에 남긴 저서 ‘Principles of Violin Playing&Teaching(바이올린 연주와 교육의 원리)’은 지도자들의 교과서로 여겨진다. ‘갈라미안 교수는 의자에게도 바이올린을 가르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모두 그가 스스로 정립한 체계적인 주법 이론을 학생들에게 차근차근 이해시키며 가르쳤다는 방증이다.

2015년 5월, 숙명여대 제자들과. 제공=홍종화.
2015년 5월 숙명여대 제자들과. 사진=홍종화 교수

모든 악기의 지도교수는 교내에서 개인지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갈라미안 교수는 학교 측의 특별한 배려로 맨해튼 72가에 있는 자택에서 개인지도를 했다.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대학 학생들은 기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으로 찾아와 개인지도를 받았다.

갈라미안 교수는 이란 서북부인 타브리즈 출신으로 어린 시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자랐다. 때문에 그의 영어 억양은 매우 강해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때 손을 들어 도움을 준 건 마거릿 파디 교수(Margaret Pardee)다. 파디 교수는 갈라미안 교수와 홍 교수의 개인지도가 있을 때마다 동행해 영어를 정확한 발음으로 통역해줬다.

“갈라미안 교수님께서는 ‘무조건 연습만이 너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셨어요. 이 교훈을 지금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죠. 꽤 엄하신 편이셨는데 어떤 때는 농담도 하시며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하셨어요. 역시 갈라미안 교수님의 제자였던 파디 교수님은 참 자상하신 여교수님이었습니다. 갈라미안 교수님께서 미처 못 챙기시는 외국 학생들의 고충을 많이 보살펴주셨어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한국을 오가지 못했기에 파디 선생님 댁에 놀러 가서 밥도 먹고, 크리스마스 때 예쁜 카드와 함께 선물도 주셔서 이국땅에서의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죠.”

홍 교수는 갈라미안 교수와의 수많은 교습 중에도 그가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파르티타 샤콘느를 지도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흐의 샤콘느는 파르티타 2번 다섯 개 악장 중 네 개의 악장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가장 구성이 크고 화려한 악장으로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갈라미안 교수는 단선율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바흐를 매우 존경한다며 홍 교수에게 화성법을 이해하면서 연주하길 원했다. 그 외에도 마담 콕스(Mary Anthony Cox)가 ‘몇 번째 줄 누구’라며 수강생을 지목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식으로 팽팽하게 진행한 Ear Training 강의는 홍 교수가 수업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고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줄리어드 졸업식. 맨 아랫줄 오른쪽이 홍종화 교수다. 사진=홍종화 교수
줄리어드 졸업식. 맨 아랫줄 오른쪽이 홍종화 교수다. 사진=홍종화 교수

◆뉴욕 '폭설' 한파에 펼쳐진 공연

홍 교수는 줄리어드에 진학한 첫해 실내악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링컨센터의 앨리스 툴리 홀(Alice Tully Hall)에서 멘델스존 피아노 삼중주 C단조를 연주했다. 뉴욕에서 첫 데뷔 연주인 만큼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는데 연주회 당일 폭설로 시 전체가 마비됐다.

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문을 닫았지만 음악회를 강행한다고 해 악기를 들고 5분 거리의 공연장을 1시간이 걸려 간신히 도착했다. 그날 저녁 1000석이 넘는 큰 홀에 100명의 청중만 겨우 입장했지만 그들의 정성에 감동한 그녀를 비롯한 삼중주 연주자 세 명은 최선을 다해 연주했고 잊을 수 없는 음악회가 됐다.

1981년 줄리어드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당시 여름방학 때 참가한 ‘International Music Program’ 오디션에서 악장과 솔리스트로 선발돼 4주간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4주간 유럽 연주 투어를 다녀왔다. 홍 교수는 독일과 이탈리아 도시들을 다니며 수많은 오케스트라 연주·협연과 실내악 연주를 통해 국제무대를 경험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또 유학 중 맺은 인연으로 이후 비올리스트 오순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첼리스트 홍성은 단국대학교 교수와 함께 ‘코리아 앙상블’이라는 실내악 단체를 만들어 초창기 단원으로 몇 년간 활동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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