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화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
연주와 지도의 균형 어렵지만 상호보완 장점 있어
가정은 삶에서 최우선, 지지해준 남편에게 고마워
바이올린 시작한지 곧 60년 "아직 모르는 것 많아"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연주자가 될지 아니면 지도자가 될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연주자는 무대를 준비하는 긴장감 속에 연습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낸다. 또 연주자는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한 연주가 있고 없고의 차이에서 수입이 들쭉날쭉하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지도자의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 개인이 집중해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을 얻었다는 ’안정감‘에 마음이 평안해지며 연주자로서의 긴장감이 풀려버린다. 그렇기에 지도자가 본연의 연주 실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2014년 5월, 숙명여대 근속 30년상 수상. 제공=홍종화.
2014년 5월 숙명여대 근속 30년상 수상. 사진=홍종화 교수 제공

“연주와 지도를 병행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제가 공부하고 연주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바이올린의 세계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면서 확인할 때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가르치면서 얻는 것도 정말 많죠.”

홍종화 숙명여대 교수는 연습을 매일 꾸준히 일정하게 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하는 일이 많아 그렇게 못하니 죄의식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을 많이 비웠다. 연주 일정이 계획되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한다. 그렇기에 연주 일정을 최대한 꾸준하고 일정하게 계획한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체력적 소모가 많아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솔로 연주보다는 좋아하는 실내악 연주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교수, 남편의 아내, 두 아들의 어머니까지 일인다역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며 힘든 점이 참 많았다. 경제학과 교수인 남편(전 박원암 홍익대학교 교수)은 그의 길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으며 두 아들 중 둘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미국에서 경제학자가 되는 등 잘 자라 주었다. ‘가정이 편안해져야 음악도 있다’라고 말하는 홍 교수의 우선순위는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다.

2014년 7월, 미국 아스펜 페스티벌에서 남편인 박원암 교수, 동료인 이혜전 교수, 이혜전 교수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와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제공=홍종화.
2014년 7월 미국 아스펜 페스티벌에서 남편인 박원암 교수, 동료인 이혜전 교수, 이혜전 교수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와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사진=홍종화 교수 제공

“가정을 지키면서 일을 하느라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달려온 것 같아요. 아이들의 육아 때문에 힘들어서 발버둥 치며 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역할을 하면서 저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라 여기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 남편과 세계 곳곳을 다녀봤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국내 여행을 자주 간다. 요리 수업에서 배운 음식을 가족을 위해 해보는 것도 즐긴다. 클래식 외에도 TV에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하는데 장르는 달라도 ’음악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배울 점이 많이 보인다.

“’레이어스 클래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애청하는데 조회 수가 폭발적이고 예술의 전당 초청연주도 순식간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우선 이 채널의 연주자 실력이 탄탄하고 편곡 실력도 출중하며 시대 흐름을 보는 안목도 탁월해서 앞으로 클래식이 가야 할 여러 방향 중 하나를 제시해주는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2015년 6월 3일 공연을 마치고 숙명여대 제자들과 함께. 제공=홍종화.
2015년 6월 3일 공연을 마치고 숙명여대 제자들과 함께. 사진=홍종화 교수 제공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내후년이면 60년이 돼요. 그런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네요. 배울 게 끝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저를 설레게 하고 괴롭히기도 하지만  바이올린은 제 운명인 것 같아요. 다음 생에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안네 소피 무터 같은 바이올리니스트!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동경에 유학을 가셨는데 하라는 법대 공부는 안 하고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홍난파 선생님 등과 친하게 지내며 바이올린 공부를 하셨어요. 결국 외증조할아버지께 한국으로 끌려오셔서 힘들게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해요. 제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할아버지가 네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라고 하셨어요. 이 정도면 저의 운명 맞죠?”

2017년 10월 개최된 독주회 포스터. 홍 교수의 열정은 가르침과 연주, 가족, 삶의 곳곳에 닿아있다. 포스터=홍종화 교수 제공.
2017년 10월 개최된 독주회 포스터. 홍 교수의 열정은 가르침과 연주, 가족, 삶의 곳곳에 닿아있다. 포스터=홍종화 교수 제공.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냐고요? 제자들이 저에게 항상 얘기하는 말이 있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연주하는 선생님의 열정을 닮고 싶다고요. ‘열정적인 음악가’로 기억되면 영광이죠.”

<끝>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