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 고문 / 전 금감원 부원장 조영제
법무법인 광장 고문 / 전 금감원 부원장 조영제

글로벌 금융시장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잠시 지나가는 스콜성 폭우에 그칠지, 일정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 토네이도가 될지, 많은 신흥국을 일거에 망가뜨릴 거대한 쓰나미가 될지 알 수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982년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물가급등에 위기감을 느끼고 조기대응을 예고한 상태라 글로벌 금융시장은 벌써부터 커지는 불확실성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로렌스 섬머스 전 재무장관 등 중량급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속속 표명해왔음에도 “작금의 물가급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애써 심각성을 외면했던 제롬 파웰 연준 의장이 지금은 신중모드 속에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다음달 테이퍼링에 나서고 기준금리도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인상폭이 0.25%포인트가 될지, 0.50%포인트가 될지가 더 관심사다. 게다가 연준이 매입채권을 줄이는 양적긴축도 올해 안에 실시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영란은행은 지난 3일 기준금리를 올렸고,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다음 달부터 금리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이제 각국이 본격적인 긴축경쟁에 나설 모양새다.

이로 인해 미국증시는 상장사들의 연이은 호실적 발표에도 1월부터 가파른 약세행진을 이어갔다. 아시아, 유럽 등 글로벌증시도 이에 동조화되는 가운데 우리 증시도 큰 폭의 변동성을 겪었다. 환율도 강세기조를 이어가더니 최근 달러당 1200원대를 돌파했고 잠시 환차익에 웃던 수출기업들도 수출여건이 급격히 악화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실제로 무역수지는 최근 원유, 가스,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난해 12월,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고 2개월 연속적자를 기록했다. 더구나 적자규모는 12월의 5억9000만달러에서 1월에 48억9000만달러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산자부는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증가와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위축되는 것 같아 어쩐지 불안하다.

이 와중에 주식에 투자했던 개미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특히 빚을 내 주식들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최근 투심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팔자니 손실실현이 두렵고 들고 있자니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나아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원금은 물론 이자 상환까지 유예 받으며 겨우 버텨온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금리인상과 유예조치 종료시 곧바로 경영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미 연준이 통화긴축에 속도를 낸다면 외채를 많이 보유한 신흥국들이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저금리에 매료돼 달러외채를 많이 들여온 신흥국들은 높아질 금리 부담과 이에 따른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신흥국발 금융위기가 재현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벌써 터키가 통화가치 위축 등으로 외환위기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올해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겠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물가상승, 막대한 규모의 부채 등으로 동력을 잃어 간다”며 “저소득국가 중 60%가 부채고통에 시달리거나 그럴 위험에 있으니 이들 국가는 지금이라도 만기연장을 할 수 있다면 해놓으라”고 권고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 가능성을 예고한 셈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갭비율 등 선제적 대비장치를 갖췄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화유동성커버리지비율, 외화건전성 3종세트 등 안전장치와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했으며 4000억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는 등 다른 신흥국들보다 나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원화가 국제통화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금융위기를 맞으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 연준과 체결했던 통화스왑협정을 지난해 말에 만기연장 없이 종료시켰다. 혹여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되고 환율이 급등하며 해외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도 오게 되면 우리 외환당국이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된다. 그동안 원자재 수입을 통해 중간재, 완성재를 만들어 수출해온 우리 무역은 위축되고 경제의 체력도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온다. 지금은 위기감을 느낄 때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국내증시와 금융시장 동향을 밀착 모니터링하고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위기가 닥치면 한 부서의 노력만으론 힘이 부친다. 대선 후 범정부적 콘트롤 타워를 만들어 치밀할 대응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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